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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워Chip War

by neofluctus 2023. 9. 12.

저자 크리스 밀러는 하버드에서 인문학부를 마치고 예일대에서 석박사를 한 사람으로 현재는 Tufts대학에서 국제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처음, 책 제목의 War라고 하는 단어를 경제적 관점으로 한정 지어 반도체기술에 관한 경쟁을 다룬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전쟁은 말 그대로 지정학적 관점에서의 미중간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인상 깊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해 보면,

제22장 ‘창조적 파괴’

인텔이 일본 업체의 거센 추격으로 D램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하고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주력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창조적파괴;Desruptive Theory”는 Clayton Christensen이라고 하는 교수의 이론을 소개한다.

당시 인텔의 CEO였던 Andy Grove는 나찌와 공산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한 헝가리계 유대인 출신이었다. 그의 책 ‘Only the Paranoid Survive’에서 "경쟁에 대한 공포, 파산에 대한 공포, 뭔가 잘못되거나 패배할 것이란 공포가 자신의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직원들의 영혼을 갈아 넣는 경영 스타일을 의미한다.(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그리고 우리나라 개발 시대의 기업인들을 연상시키면 좋을 듯….)

‘창조적 파괴’란 修辭수사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DRAM은 사실상 Ford가 자동차인 것처럼 인텔의 정체성은 DRAM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장을 뒤집는wrenching guts, 이가 갈리는gnashing of teeth 듯한 상황이었다고 묘사한다.

당시 인텔이 우위에 있었던 마이크로 프로세서 시장 규모는 상당히 작았기 때문에 DRAM을 포기하고 마이크로 프로세서 시장에 올인한다는 것은 거의 도박에 가까운 결단이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앤드 그로브와 같이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과 판단력을 조명한다.( 다 아는 것처럼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가 도스 그리고 윈도우와 같은 PC의 운영체계를 만든다.)

23장

일본의 도전을 뿌리치는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두 가지 기술에 대해 소개한다.

먼저, 소위 반도체와 관련한 미국의 혁신의 과정 중 Mead Conway Revolution이라고 불리우는 VLSI(Very Large Scale Integration)은 미국방부 산하 DARPA(Defence Advanced Reasearch Projects Agency가 첨단 미래형 기술을 지원)의 지원에 의해 Mead와 Conway에 의해 VLSI Very Large Scale Integration, 칩 디자인 자동화design automation프로그램으로서 개발된 기술이 그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DARPA기 지원한 무선 통신 기술인데 Irwin Jacobs란 인물에 의해서다. 무선 통신의 어려움은 주파수 간의 간섭 현상을 제거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제이콥스가 개발한 알고리즘을 통해 데이터를 압축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의 복잡성 때문에 ‘칩’의 성능이 고도화될 때까지 무선 통신의 가능성은 회의적이당. 그러나, 인텔이 마이크 프로세서 시장에 진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시기에 바로 Qualcom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부의 지원DARPA은 망해가는 기업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미래형 첨단 기술에 대한 지원에 집중해야 효과적이란 사실이다.

30장

유소기가 중국의 미래는 전자공학에 있다고 봤던 반면 모택동은 쇠와 철강 중심의 중공업만을 중국의 산업비전이라고 보고 전자산업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반동reactionary라 규정한다. 이것이 1950년대 중국의 ‘대약진 운동’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의 하나임을 말한다.

32장 

Lithography War (석판 인쇄)란?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실리콘 웨이퍼에 빛을 쏘여서 회로를 심는 기술이다. 이 석판인쇄술은 반도체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어 준 기술인데 현미경의 렌즈를 거꾸로 사용해서 실리콘 위에 화학물질을 도포해 빛을 쏘임으로서 작은 공간에 회로를 심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이마저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단순히 빛을 쏘는 것만으로는 그 나노공정의 작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되고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X선을 사용할 것인지 극자외선Ultra Violet Ray을 사용할 것인지 하는 싸움이 전개된다. 

33장

인텔 프로세서가 PC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X86이라고 하는 반도체 설계 기술을 표준화 시키는 데 있었다. 그것은 X86이 기술적 완성도가 최선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표준화 전략으로서 X86만이 인텔의 해자moat를 깊게 만들어 인텔이라고 하는 성城port의 안전profit margin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Andy Grove)

하지만, 1990년대 애플을 중심으로 X86이 아니라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설계에 기반한 Arm이라는 회사가 출현하며 인텔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의 전략은 인텔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텔의 비즈니스 모델에 도전하는 것이다. 즉, 팹리스에 이들에게 자신들의 라이선스를 팔고 로얄티를 받는 새로운 모델을 만든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인텔이 X86을 독점하는 시장에서 벗어나 그 반도체 디자인을 수수료만 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시장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또 하나 인텔의 패착은 성장하기 시작한 모바일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주저한 채, PC시장에 머무른 것이었다. 이것 역시 앤드 그로브의 판단이었다.  

39장 EUV(Ultra Extreme Violet)

네델란드 회사 ASML에서 생산되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원래,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심는 과정은 표면에 광선 즉, 가시광선을 비춰서 만드는 공정이다. 그런데 그것이 미세공정으로 발전함에 따라 가시광선의 파장이 너무 넓어 기술 발전의 속도에 대응할 수 없게 되고 자외선의 극단 범위에 해당하는 13.5나노미터의 단위에 이르는 노광장비를 개발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다. 극자외선은 x-ray와의 경계선에 위치해 빛을 굴절시키지 못하고 흡수하는 현상이 발생하곤 하기 때문에 더욱 큰 난제들을 수반하는 기술 개발 과정이고 신규로 시장에 진입한 플레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이도를 갖는 기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광장비EUV lithography tool는 제작만 네델란드에서 될 뿐이지 독일, 미국 등 다양한 국가, 다양한 기업들의 첨단 기술, 장비, 부품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제품이다. 여기서 어떤 기술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이같은 다국적성이 최첨단 반도체 산업의 실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최첨단 기술은 어느 한 국가에 배타적, 독점적으로 지배될 수가 없는 속성을 갖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4부 중국의 도전 China’s Challenge

43장

2017년 시진핑 주석이 다보스 포럼에 데뷰하던 시점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2600 억이었는데 이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총 원유수출액 또는 독일의 자동차 수출액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중국은 매년 전세계 항공기 거래액 보다 많은 돈을 반도체 구입에 지출한다. 반도체보다 국제 무역에서 더 중심적 역할을 하는 제품은 없다.

중국의 ‘제조 2025전략’은 Status Quo(현상유지)를 유지하는 미국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의 편입이 아니라 자신이 배타적 독점적 위치를 대신 차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게임의 룰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이 같이 게임의 지배자가 되려는 시도는 중국 외에는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제8부 Chip Choke

49장

미국반도체협회the Semiconductor Industry of Association회장 Krzanich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정부 당국자들과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우려와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시 미국의 소위 기술정책tech policy은 세계화와 효율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고 이것은 업계의 로비 그리고 워싱턴의 지적 컨센서스intellectual consensus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에 오바마 말기 까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냉전의 승리는 미국에게 ‘자유주의의 승리’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만들고, 글로벌리즘은 대한 신앙적 신념으로 되어 중국의 위협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책은 전체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4부 중국의 도전부터 끝까지 중국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8부의 제목은 ‘반도체로 중국의 목을 조인다chip choke.’는 말  전쟁 용어를 그대로사용한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과 중국은 ‘이미 시작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 있게 해주어 반도체 주식 등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대단히 유익한 책처럼 보인다.

부키라는 출판사에서 지난 5월에 번역 출간되었으니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꼭 일독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