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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왕국 Kingdom of Characters

by neofluctus 2023. 9. 24.

‘문자의 왕국’이란 수천년간 漢子(한자)를  써온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책의 제목으로 매우 적절해 보인다. 26개뿐인 알파벳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영어의 표기체계와 비교했을 때 수 만 개의 서로 다른 글자를 갖는 중국의 한자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이 ‘문자의 제국’의 근대사는 오랑캐 서양 열강에 비참하게 얻어 터지면서 시작했고 치욕적인 반식민지로 전락했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중국의 후진성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끊임없이 지적되어 온 것이 바로 한자였고 그 같은 주장은 일본, 한국의 漢子廢止論(한자폐지론)에도 맥락이 닿아 있다.

언어와 그것을 표현하는 문자체계는 사람들의 正體性(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정체성 자체 또는 그것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한자폐지론과 같이 과격한 변화[한국(북한을 포함)을 제외]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忍苦(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근대화의 높은 파고를 이겨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한국에서는 한글 全用論(전용론)이 더욱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 하다. 한국사회는 수천년 우리 민족의 문화적 매개 수단이었던 ‘漢子(한자)’에 대해 탈레반 못지 않은 原理主義원리주의Fundamentalism적 적개심을 드러내곤 한다.(나는 이것이 민족주의적 급진주의라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배 엘리트들이 대중을 정치적으로 손쉽게 통제하려는 저의가 숨겨진 우민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맥락없이, 일관성도 없이 똑같은 외국어이면서 불과 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지 채 백년도 되지 않은 영어와 같은 서구 언어의 借用(차용)과 濫用(남용)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용적이다. 혀를 찰 수 밖에 없는 笑劇(소극)farce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조선시대의 정신적 문화적 事大(사대)의 연장선상에 있는 한국인들의 마인드셋mindset에서 비롯된다고 추측할 수 밖에 없다. 우리들은 줏대가 없는 편이다. 또, 한자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한 문해력의 退化(퇴화)가  知的(지적), 문화적 퇴행 그리고 마침내 정치적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 요소 중의 하나다. 물론, 그 문해력의 퇴화가 한글 전용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효율과 디지털화를 명목으로 택한 지식 습득의 편의성이 지적인 노력의 나태와 궁핍화로 이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양의 근대가 카톨릭의 지적 문화적 독점과 횡포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사상적 지적 투쟁을 해왔는지 그리고 그런 지적, 문화적 투쟁을 통해서 근대 민주주의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한국사 전공자들 중 근대현대사 연구자들의 비중이 8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80년대까지 사학계에서는 최근의 역사적 평가를 다소 금기시 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운동권을 중심으로 현대사 연구 비중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이런 터부가 깨지고 좌파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편향이 지배적으로 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자로 쓰여진 사료 접근에 대한 장애와 한계를 우회하고자 하는 얄팍한 학문적 기회주의가 역사학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자를 천대하는 한국 사회의 우민화 현상은 신흥 좌파들의 학문적 장삿속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목적에 성공한 대표적 한글 전용 집단이 바로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일 것이다.

앵글로 색슨을 비롯한 서유럽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를 로마 그리스 문명에 두고 있으며 그 계승자로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브리타니아라는 변방의 섬나라가 도대체 에게해의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무슨 지리적, 역사적, 민족적, 문화적 근친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유럽이 고대 그리스 로마문명이 몰락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접하게 된 것은 스페인의 꽁퀘스트 이후 아랍어로 번역된 서물들을 통해서 였다. 서구사회가 그리스 로마 문명의 계승자라는 주장은  역사소설과 같은 일종의 창작이고 역사적 날조이며 뻔뻔스런 표절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신대륙에 비견할 만한 새로운 발견과 같은 지적 신대륙을 발견하고 자기 것으로 체득하고 체화한 변방 오랑캐들의 기회주의적이고 知的(지적)인 敏捷性(민첩성)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한다. 더구나, 우리들이 서구를 그리스 로마 문명의 계승자라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고 프레임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팽창하면서 만들어낸 논리를 아무런 필터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錯視(착시)적 오해다. 앵글로색슨 제국을 비롯한 서구를 그리스 로마 문명의 적통이란 주장은 최근의 발명이다. 

현대 한국어 어휘의 65%가 漢字語(한자어)라고 한다. 그런데, 한자어는 同音異義語(동음이의어)가 너무 많다. 중국어는 口語(구어)에서 聲調(성조)를 통해 그 의미차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한국어는 구어, 문어 모두에서 그 차이를 구별할 수가 없다. 한국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행정지명에서 고유어를 지우고 한자로 표현하는 정책을 택하면서 언어표기의 자주성을 포기하고 대신 선진 문화(한자)를 적극 수용하는 효용 위주의 선택을 한다. 반면, 일본은 한자를 표기하는 데 있어서 音讀(음독)과 訓讀(훈독)을 동시에 사용하는 번거로움을 지켜 나간다. 和魂洋才(화혼양재)는 근대에 갑작스럽게 출현한 선진문명에 대한 수용방식이 아니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이 중국의 화화족과는 다르다는 인식이 뿌리 깊었지만 동시에 우월한 문명을 수용해야만 한다는 현실주의적 당위성에 대해서도 매우 냉철한 판단을 하는데 그것이 和魂漢才(화혼한재)라는 중국문명에 대한 수용 태도로 나타난 것이며 메이지 유신과 같은 혁명을 이룰 수 있는 문화적 저력의 원천이었다고 본다. (물론, 현실적으로 일본어는 음가의 제한으로 인해 한자를 써야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한글은 그런 한계를 띄어쓰기로 그 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영어가 라틴어, 한자와 같은 제국의 언어가 되는데는 섬나라가 제국으로 팽창하면서 오랑캐의 언어가 근대화되고 고급화되고 풍부해지는 데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자와 마찬가지로 영어를 제2외국어로 오랜 시간 공부하고 그 영어로 서물을 읽고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어휘의 발견과 사전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영어 사전을 찾다 보면 한 단어에서 그 많은 동의어들을 발견할 수 있고 각각은 문장의 미묘한 맥락의 차이에서 그 의미를 다르게 하면서 그 문화의 내용을 깊고 풍부하며 다양하게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된다. 영어사전과 국어사전을 비교해 보면 우리 문화의 열등과 후진성이 너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우리가 한글을 언문이라 하대하다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식민지 사회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민족주의적 민주주의적 각성과 한글 성경의 보급을 통해서 기독교를 전파, 미국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다른 하나였다. 

동아시아 사회는 왜 한자 중심의 문명, 문화를 발전 시켜 왔던 것일까? 전근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계급사회였다. 한문처럼 배우기 어려운 문자체계는 지배계급이 사회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는데도 상당히 유용한 도구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의 라틴어 역시, 배우기 어렵기로는 한자에 비견할 바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언어의 습득을 어렵계 만든 이유는 문명, 문화에 관계 없이 계급사회의 불평등을 고착, 확대시키려는 의도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자의 嚆矢(효시)라 일컬어지는 甲骨文字(갑골문자)는 神託(신탁)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그 기원은 하늘의 啓示(계시)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한자는 단지 언어적 수단만이 아니라 天命천명이라고 고대인들이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商(상)나라 사람들은 화화족이 아니라 동이족 계열의 사람들이었다. 화화족과 언어의 갈래가 다른 동이족이 처음 한자라는 표의문자ideograph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한자의 출발이 종교적 占辭(점사)를 표현하는 일종의 기호, 상징체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더욱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또, 성리학을 숭상했던 조선조의 양반 사대부들은 한문으로 된 경전의 독서를 통해 하늘 또는 우주의 理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곤 했다. 한문 경전에 대한 독서는 중요한 수행의 한 방법이고 일종의 기도와 같은 행위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언어란 측면에서의 문화란 ‘간편성, 편의성, 효율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21세기 컴퓨터의 발전은 한자가 언어의 표기체계로서 갖는 이 같은 번잡성을 문화적 특수성으로 승화시키고 인류의 보편적 문화 자산으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로 읽힌다. 그리고 한자혼용을 일제의 殘滓잔재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일제강점기 36년을 넘어서 우리 민족은 3~4세기부터 한자를 사용해 우리의 얼을 표현해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자로 우리역사를 기록해 왔고 그것을 지우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우는 일이다. 

이 책은 한자와 중국어의 근대화를 향한 지난한 과정을 소개한다. 타이프라이팅typewriting, 電信전신과 같이 서양의 알파벳을 근간으로 창조된 근대문명의 利器이기들은 한자에 너무나 적대적이었다. 우리는 한글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난관과 허들을 너무나 가볍게 넘어올 수 있었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생사를 넘나드는 존재론적인 위협이고 도전이었다.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 지난한 몸부림을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끝에서 한자 혁명은 이제 서양의 근대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한자 디지털 민족주의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초작업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첨예화 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서플라이체인에서 5G까지 글로벌 스탠다드를 그들 중심으로 구축하고 싶어 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들이 ‘표준설정자stadard setter’가 되려고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한자의 현대화는 즉 병음체계와 간체자의 채택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단순히 병음체계와 간체자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알파벳을 표준으로 셋팅이 된 서구의 근대사회에 중국어, 한자가 적응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을 드문 드문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재 한자를 사전에서 찾을 때 部數부수와 劃數획수를 이용하는 방법은 알파벳 또는 ㄱㄴㄷ을 그 순서로 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 部數부수는 영어로 Radicals라고 표현하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부수를 통해 처음 한자를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후한 시대 許慎(58~148;90살까지 장수)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는 부수를 음과 양의 원리 등을 바탕으로 540개로 나누어 처음 한자를 분류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수와 획수를 매개로 한자를 찾는 방식은 淸代청대의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 유래하며 우리나라에서 한자사전을 ‘자전’이라고 표현하거나 그 찾는 방식은 모두 여기, 강희자전에서 비롯된다. 

이와 같이, 한자의 구조를 분석하는데 ‘부수’는 대단히 핵심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현대의 부수조차 214자 되니 이를 바탕으로 타자기를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한자 타자기라고 소개하는 것들이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거나 이해하고 있는 타자기인지는 조금 의심스럽지만 최종적으로는 한자를 디지털화하는 과정을 소개하려는 것이려니 하고 넘어 가기로 한다. 

한자의 복잡성을 어떻게 단순화시켜 근대적 타이프라이팅과 전신電信에 어떻게 최적화最適化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taxonomy, 즉 분류법과 같이 abc와 같은 배열로 순서화 하는 사물의 분류 체계화 문제도 한자 근대화의 중요한 화두였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책의 분류 체계는 정보의 저장 및 처리 방식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것이 중국의 근대화에 死活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그 같은 taxonomy분류법은 도서관의 도서 분류체계, 구글의 검색기능과 같은 인터넷의 정보 입력, 분류, 출력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아무튼, 중국어의 음가를 바탕으로 한 병음拼音체계를 통해서 한자의 근대화가 일단락 된다. 반서구 반제국주의를 국시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어를 라틴어 표기체계를 통해 디지털화를 구현하는 용기?를 내며 백년에 걸친 노력이 정리가 된다.

무슬림을 일컫는 回族이란 말은 메카에 대한 그들의 성지순례, 즉 메카로 回돌아간다는 의미에서 回族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회족들은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었는데 이들 투르크계 언어는 아랍어 등으로 표현하는데는 한계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소련 정부는 이를 러시아의 키릴문자 등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 고조되기 시작한 중국공산당과 소비에트 연방의 대립, 갈등이 로마자화 된 한자병음체계로 돌아 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재, 중국공산당은 사이버 공간에서 인터넷 만리장성을 세워 놓고 서구의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 그런데, 한자는 그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정보의 만리장성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만리장성이 단기적으로 정치적 서구와의 정치적 분단을 이루는 장애물이라면 한자는 문화적으로 서구와 중국을 구분짓는 국경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서구가 제시하는 그 어떤 과학적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의 선전기관이 제멋대로 간체자로 써 갈기며 선전선동을 하면 중국의 대중들은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간자체의 사용에 대해 문화적 미학적 이유로 반대가 있었지만 병음과 간자체의 채택을 통해 15세 이상 인구 중 1982년까지 65.5%, 2018년 현재, 96.8%의 인구가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결론이다. 현대의 정치는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또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건 대중을 어떻게 동원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이 시간과 품이 들지만 설명과 설득을 통해서라면 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과정이고 선전선동을 통한 여론 조작이 훨씬 효율적이라면 전체주의의 승리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를 지켜보면 어느 것이 승리할지 아슬아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