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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클래식 음악

멘델스존의 성악곡(聖樂, 聲樂):칸타타 "시편 42", "오라토리오 엘리야" 등

by neofluctus 2024. 4. 11.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

멘델스존이라는 음악가를 처음 알게 것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E-minor 통해서였던 같다. 그리고 다시 그가 나의 주의를 끌었던 음악은 교향곡 4 이탈리안이었다. 그러다 점점 그에게 익숙해지면서 1~2 전쯤부터 그의 시편 42(기독교 또는 유대교의 구약 성경의 일부) 칸타타cantata 가끔식 접하게 되었다. 성악과 기악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멜로디가 점점 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본래 악기보다는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기악 합주 음악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시기 역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인간의 목소리는 음악을 표현하는 원초적 매개였을 것이다. 그때문인지 악기와 다르게 인간의 성대를 통해 전달되는 음악의 울림은 사람들에게 분명 또다른 느낌의 공명을 전달해 준다고 느낀다.

하지만, 노래는 멜로디뿐 아니라 가사를 수반한다. 한국인이 서양 고전 음악을 접할 특히, 오페라 같은 장르의 음악은 소위 리브레토Libretto(오페라나 칸타타 음악의 가사) 음악에 익숙해지는 가장 장애물로 된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그것은 여흥이나 취미를 넘어 상당한 노고를 수반해야 하는 연구의 영역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쉽게 친해지기 힘들다. 외국 문학은 음악처럼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발레는 조금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역시 스토리를 춤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언어적 장애가 수반된다.

반면, 기독교 聖樂(성악)곡은 상대적으로 텍스트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용이한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 성경은 한국에 가장 보편적으로 보급된 서양 텍스트의 종류일 것이다. 그리고 전통 사회에서,하늘이라는 추상적 절대자와 기독교의 하느님은 대단한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유일신을 이해하는 수고를 덜게 해준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2번은 최근 연구에 따르면 교향곡으로 분류하기 보다는 일종의 칸타타로 보고 있다고 한다. 전체 시간 정도의 연주 시간 처음 25 정도는 서곡과 같은 기악으로 연주되고 다음 합창과 솔로가 나오기 시작한다. 음악의 제목, 독일어Lobgesang 영어로 표현하면 Hymn of Praise이다. , 讚頌(찬송),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찬미를 의미한다. 음악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 4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된 음악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덕분에 성경을 가톨릭 교회가 독점하던 시대에서 귀족과 부르조아들도 함께 공유할 있게 되었다. 하나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과정이었고 그때서야 비로소 이들 신흥 계급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있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느님의 신비와 영광을 더욱 찬미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구 사회의 유대인 포비아는 적어도 거의 년에 육박하는 역사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2 가까이 숭배해 예수의 국적? 유대인이었고 그는 33년의 짧은 생애 동안 번도 유대인의 땅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구성원 설립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로마 군단에 의해 유대 왕국이 멸망하자 지중해 양안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공동체들 상당수는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며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로마인, 그리스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에 의해 건설된 것이었다.

신학자들은 예수보다 오히려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교를 세계 종교, 보편 종교로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는 같다. 바리사이파 유대인으로 예수를 따르던 무리를 이단으로 단죄하던 그가 극적인 체험을 통해 예수를 하느님과 동일시하게 사건 이후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의 문지방을 넘어 이방인들에게 개방되는 종교적 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이 오라토리오 파울루스Paulus 연주를 들을 연상되는 대목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멘델스존은 당시 요한 세바스찬 바흐라고 하는 세상에 잊혀져 있던 음악가를 발굴해 세상에 알렸고 프란쯔 슈베르트 같은 흙수저 음악인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 데도 역할을 했다. 파울루스와 같은 오라토리오는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에서 받은 영감이 컸다고 한다. 

오라토리오 엘리야 엘리야는 구약 성경 열왕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유대교는 폐쇄적인 부족 종교의 성격이 강했다. 히지만, 예언자 엘리야는 이런 폐쇄성을 극복하고 유대교가 이방인에게도 개방된 종교임을 알리는 인물이었다. 이는 멘델스존의 종교적 전향을 개종이 아니라 유대교의 보편적 확장이라는 의미 맥락에서도 해석할 있게 해준다. 엘리야의 리브레토는 열왕기, 시편, 신약의 로마서 다양한 곳에서 따왔다. 

유일신교의 특징은 창조주와 피조물, 인간의 관계, 하느님 뜻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순명에 있는 같다. 때로 그것은 미사곡 Kyrie에서 가장 적절하게 표현이 되기도 한다. 보통의 경우 미사곡은 키리에로부터 시작한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먼저 규정하고 시작하는 종교적 예식인 것이다. 

밖에 미완성 오라토리오로 크리스투스Christus 있다. 나는 음악이 미완성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멘델스존은 일종의 경계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멘델스존 음악의 절정은 바로 그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방황하는 경계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확증할 수는 없고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크리스투스는 같은 유일신 종교 사회, 유대인, 이슬람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회 내부에서도 신인가 인간인가 의견이 분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의 성악곡은 시편(Psalms) 42부터 듣기를 권한다. 음악은 대단히 아름다우면서도 다른 성악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30 내외의 길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우리 모두는 절망의 골짜기를 걷게 되고 고통의 심연에서 하느님을 찾고 자비를 구하는 경험을 가질 있다. 그런 상심의 시간에 빠져 있다면 충분히 위로가 되어 음악이라고 생각된다. 시편 42 말고도 95, 98, 114, 115 등의 음악이 있는 같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는 대개 2시간 이상이라 음악에만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뭔가 부산스럽지 않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들으면 좋다. 낯선 음악도 자주 듣다보면 익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