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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클래식 음악

아레초의 귀도

by neofluctus 2024. 2. 24.

서양 고대 후기 혹은 중세 초기의 네우마라고 하는 악보를 귀도가 발명한 현대의 악보로 재현, 비교한 그림이다. 오선지를 사용한 악보는 아레초의 귀도 덕분이다.

가톨릭 교회는 1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커다란 내적 쇄신과 개혁 운동을 펼쳐 나간다. 그리고 오늘날 서양 중세를 떠올릴 교회가 세속 권력를 압도하는 신정 체제를 연상하는 배경이 된다. 그리고 개혁 운동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교회 음악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이러한 배경에서 아레초의 귀도(995?~1033?)라는 베네딕토회 수사를 기억해야만 한다(아레초라는 도시는 피렌체에서 조금 아래에 있다).

그는 원래 이태리 북동부 베네치아 아래 하류의 도시, 폼포사 수도원의 수사였다. 시기 미사 전례곡은 口傳(구전) 내지 ()구전 형태로 통일된 형식 없이 중구 난방으로 연주되고 있었고 귀도는 문제를記譜(기보;악보를 작성)’ 통해서 해결할 있다고 보았다. 미사에서 先唱者(cantaore,선창자;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창자 또는 독창자)에게 멜로디의 진행을 제시하는 기호인 네우마neume(그레고리오 성가, 동방 여러 교회의 기복법에 사용되는 기호) 음의 높이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고, 선창자의 멜로디 암기에 전적으로 의지할 밖에 없었다. 귀도는 아마도 알파벳을 이용한 기보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혁신은 동료 수사들로 부터 엄청난 저항과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그만큼 聽唱(청창)에서 視唱(시창)으로의 전환은 인류의 음악사에 있어서 혁명적 과정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보통, 선창자Cantaore 충분히 숙련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10 정도 소요되었지만 귀도의 방법을 적용하고는 1~2년의 학습 기간으로 충분했다 한다. 이 같은 음악의 표준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혁신이었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폼포사 수도원 수사들의 반발은 혁신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엿볼 있게 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례에 해당한다. 가톨릭 교회의 전례가 중세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에 비례해서 선창자들은 일종의 기득권 집단이었고 이들과의 갈등으로 인해서 그는 폼포사를 떠나 아레초로 망명하게 된다.

귀도는 아레초에서 환대를 받으며 음악 교육에 전념하게 되고 이후 그의 음악적 혁신은 교황청이 있는 로마에 이르게 된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였고 귀도의 음악적 혁신도  교회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역사적 때를 만나 꽃을 피우게 된다. 하지만, 그는 로마의 부름을 받고 머물던 병이 나서 로마를 떠나게 된다. 이때 그를 내쫓았던 폼포사가 후회를 하며 다시 그를 호출하기도 했다고도 하는 그의 행방은 아마도 아레초로 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권위와 하느님께 순명하는 수도자였다고 한다. 

귀도는 옥타브와 협화음을 개념적으로 명확히 분리했다. 다른 옥타브의  같은 음의 관계를 협화음과 구분했던 것이다(다시 말해 이전에는 다른 옥타브의 같은 음의 관계를 협화음으로 파악했던 같다). 음악 체계의 바탕으로서 옥타브 배치하고, 오선지를 바탕으로 한 알파벳 記譜(기보) 사용하면서 음악 교육과 음악 발전의 신기원을 이루게 된다. 음정을 측정할 있는 기본적인 기구들의 사용과 함께 아이들에게 알파벳 기보법으로 필사된 음표 하나 하나의 선율을 익히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계이름(Solmization) 발명도 귀도의 업적이다. 처음에는, , , , , 라고 하는 6개의 음만으로 시작했으나 "Sancte Iohannes,”, 라틴어로 세례자 성요한(Saint John the Baptist) 글자를 따서 ‘Si’라고 하는 하나의 온음이 추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8음계가 완성된다. 물론, 이와 같은 계명창법(Solimization) 온전히 귀도의 창작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그가 중요하며 일반적인 음악적 도구로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없을 같다. 영미권에서는 19세기부터 ‘Ti’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귀도의 음악적 혁신의 목적은 고대 로마의 음악적 전통을 그레고리오 성가 안에서 충실히 계승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서양 클래식 음악은 그리스 로마 고전 문명의 맥락 안에서 파악할 수 있는 문화적 전통임에 틀림 없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