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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나드 케인스 2

by neofluctus 2024. 3. 28.

케인스는, “자유민주주의가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번영이 자유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와 역사 속에서 엘리트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엘리트와 대중이라는 사회적 구도는 거칠지만 대략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관계로 연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불평등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사회 구조에 대한 모색이 있었지만, 그리고 그에 대한 탐색과 논의가 여전하지만 그 위계적 기본 구조는 불변인 것처럼 보인다. 케인스는 당대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천재’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지식인이고 엘리트였다. 

지난 번 읽었던 책 [유전자 로또]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과 傾斜(경사)를 유전적 또는 생물학적 僥倖(요행)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의 선천적 우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인공적으로 그 자연을 완전히 시정하고 교정하지도 못한다. 다만, 케인스 같은 엘리트가 그 경직되고 고착화된 사회적 관계의 활로를 여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역사를 영웅론적 사관 또는 민중사관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하는 순환론에 빠지게 되는데 솔직히 민중사관이라는 개념은 political correctness와 같은 레토릭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 민중사관을 주장하는 관점 역시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뚱과 같은 걸출한 혁명 지도자들이 없었다면 민중봉기를 통한 혁명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은 11세기 노르망디 윌리암공이 브리튼 섬을 침공한 이래 대내외적으로 혁명적 사회 변화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안정적 사회관계를 바탕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후레 자식(실제,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등은 모두 서얼 내지 사생아 출신이었다)들이 건설하고 건국한 미국과 함께 앵글로 색슨 제국의 위용과 생명력은 계속되고 있다. 저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영국 지배계급이 대단히 유연하고 포용적이라고 말한다. 재능있는 인재들이 나타날 때마다 항상 적극적으로 그들을 지배계급의 이너 써클로 포섭하고 수용하면서 제국을 풍요롭게 했다는 것이다. 

케인스가 미국과 함께 전후 세계 경제, 금율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은 영국이 미국에 패권 자리를 양도하면서 스스로 2등의 지위를 자발적으로 자청하며 내려오는 소프트 랜딩처럼 관찰된다. 이렇게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패권의 이양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미국과 영국의 혈연적 역사적 특수관계를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영국 또는 앵글로 색슨만의 고유한 개성, 민족성, 국민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계산과 실리에 충실한 상황 인식 본능이야말로 앵글로 색슨족의 차별성과 우월성을 특징짓는 요소처럼 보인다. 영국과 미국의 왕위계승은 결과론적 관계일지는 몰라도 필연적인 관계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영국 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는 말할 수 없는 잔학함과 교활함을 다했지만 적어도 그들 내부의 결속은 단 한 번도 극심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정말 주의 깊게 관찰하고 배워야만 하는 영국사의 교훈이다.

케인스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드레이크 선장이 해적질을 통해 스페인의 금은보화를 약탈해서 마련한 재원이 영국 자본주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자본주의 초기의 본원적 자본 축적 과정이었다고 파악한다.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귀족의 작위를 받는다. 그를 묘사하는 헐리우드 영화는 어렵지 않게 찾아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헨리 5세가 백년 전쟁의 와중에 프랑스어를 버리고 영어를 사용하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화되면서 영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 소위 band of brother의 정신이 여기에 속한다.

케인스는 캠브리지 경제학의 시조를 멜서스라 떠받들고 封禪봉선한다. 멜서스는 잘 알려진 ‘인구론’ 뿐아니라 ‘유효 수요’란 개념도 처음 주장했다. 그 유효 수요란 개념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비참한 영국의 프롤레타리아 상황에 대해 일종의 구호활동과 같은 정부 지출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유효 수요란 빈민 계층에 대한 救恤(구휼)이라는 차원에서 시작된 경제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휼이란 단기 고용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말이 되었지만) 고전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장기적으로) 자연 균형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멜서스의 인구론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산아 제한 대책도 포함되며 케인스 역시 인구의 증감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입장이 바뀌기는 하지만 멜서스와 같은 맥락에서의 인구 정책을 주장하기도 했다. 

양차 세계 전쟁 사이 극심한 경제적 불황과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이 아니었으면 케인스 혁명 또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일반이론은 철저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부터 자본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시대적 산물이며 그 勞作노작이라고 파악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밀턴 프리드먼이 자연 실업률이란 개념을 제시할 때 점점 경제학은 수학 내지 과학적 엄밀성을 내포하게 되지만 케인스는 그 실업률은 오히려 지극히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파악한다. 그것은 그 사회가 얼마만큼 그것을 용인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가변적 수치라는 것이다. 피지배 계급이 그 사회의 지배자들을 얼만큼 신뢰하는가 하는 문제다. 또 불경기의 원인이 되는 화폐의 退藏퇴장이란 문제 역시 신뢰의 문제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신용 경제란 것을 의미한다. 지배 계급 또는 정부와 공무원들에 대한 신뢰가 없는 자본주의 국가는 붕괴되기 마련이다. 

원래 미국 민주당은 남부 노예제를 찬성하는 남부 백인들의 정당이었다. 남북전쟁의 패전 이후 미국 정치는 북부의 공화당 세력이 주도했고 민주당은 비주류로 몰락 이를 갈며 권토중래를 꿈꾸다 루스벨트의 등장과 함께 뉴딜 정책을 펴면서 일약 사회민주주의를 미국 땅에 뿌리 내리고 소위 ‘리버럴’이라는 이념을 체현하는 정치 집단으로 화려하게 환골탈태하게 된다. 미국 사회의 풍요, 평등, 민주주의, 민권 등의 서사가 모두 이 시기 이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 세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와 함께 신자유주의로의 變態변태가 다시 한 번 시도되고 그것이 대서양 양안의 지배계급의 컨센서스가 된다. 세계화로 상징되는 부자들의 작위적 의도적 전횡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민중 봉기를 사주하고 조장할 수 있는 반자본주의 이데올로가 사망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워하고 경계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은 “신자유주의 질서의 부상과 몰락”이라는 책에서 봤던 것처럼 경제 대공황,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라는 각각의 위기 속에서 시대의 변곡점을 찍고, 시대적 전환을 이루게 되는 것 같다. 

케인스의 죽음은 일종의 과로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학자로서 뿐아니라 재무부 관료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영국의 경제 금융 정책 전반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와 같은 존재였다. 영국의 국익을 위해서 미국과의 전후 경제 질서를 조율하다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

최근의 연구는 전후의 호황이 전부 케인스의 경제 이론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의 향상에 힘입은 바가 오히려 더 크다고 한다. 그 밖에도 재커리 D. 카터의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서양 양안의 지배계급 사이에서 그의 업적과 가치를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지속되고 있다. 

절대 빈곤 못지 않게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발탁감은 크다. 케인스와 같이 피지배계급의 아픔과 고통을 위무할 수 있는 지배계급의 지도 역량과 아량이 발휘되지 않는다면 세상을 뒤집어 엎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혁명의 에너지는 끊임없이 내연하며 사회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 지배계급의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역시 또 다른 천재의 再臨재림을 기다려야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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