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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전쟁

by neofluctus 2024. 3. 31.

저자 제프리 로버츠Geoffrey Roberts는 영국 출신이고 아일랜드의 대학에서 주로 가르친 소련 역사학자다. 또 과기대의 김남섭 교수는 이 책을 아주 깔끔하게 잘 번역했다. 잘된 번역의 책을 대할 때마다 번역자의 노고에 감사하게 된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한국 사람에게 소련을 연상시키는 러시아 역사는 냉전 이후에도 일정한 선입관 속에서 바라 보게 된다. 기본적으로 6. 25사변 때문이지만 그 밖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보도에서 서방 언론의 영향에 일방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냉전 구조에만 함몰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고 러시아와의 이해관계도 깊어졌다. 따라서, 서방의 편향된 대러시아 시각에만 머물러 있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러시아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스탈린이 한국 전쟁을 사주했다는 事實(사실)은 불변의 史實(사실)이었다. 소련이 6.25 사변을 주도한 마스터 국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의 성장이 러시아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러시아 또는 소련에 대해 우리 내부가 기존의 관점으로부터 변화된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부터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할 때까지의 소련 역사를 주로 스탈린에 초점을 맞춰 기술하고 있다. 20세기말 러시아 정부는 과거 소비에트 시절 대량의 공문서들을 공개해 보다 풍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시기의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서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저자 제프리 로버츠는 대표적으로 이들 러시아 사료들을 바탕으로 스탈린 주도 하에 독일 나찌와 벌인 소위, “大祖國(대조국)전쟁”에 대해서 상술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세계2차 대전의 實像(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헐리우드 영화의 세뇌? 속에서 제2차 대전은 영미 연합군과 추축국 독일, 일본의 싸움이란 구도가 지배적인 이미지이지만 실제 유럽에서 벌어진 2차 대전의 주전장은 독일 나찌와 소비에트가 싸운 동부 전선이었다는 역사적 眞相(진상)이다.

1941년 6월 22일 시작된 소련과 독일의 전쟁은 그 첫해 소련의 전사자가 5백만 명에 이른다. 전쟁 기간 4년 내내 1천만 명의 전사자 그리고 민간인 2천만 명을 포함해 3천만 명이 전쟁에서 죽었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인구가 1억 7천만 명이었다. 사망자에 더해 부상자를 포함하면 이 전쟁의 참상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큰 시련이었을 것이란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한국 전쟁 당시 사상자는 1천만 명 가량이었다고 한다. 한반도의 사이즈로 따지면 역시 상당한 규모의 전쟁이었다) 소련을 침공한 독일 나치군은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군대였다. 그들의 강력한 기갑부대, 독일군의 엄격한 규율과 독일 군인들 개개인의 탁월한 자질 등에 대해 스탈린은 전쟁 기간 내내 거듭 칭찬하면서 전후 독일의 완전한 해체 또는 약체화를 주장한다.

스탈린은 영미에게 유럽 대륙에서 제2전선을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국은 꾸물대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전선에 참전하는데 이는 수에즈 운하 등과 관련한 영국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1944년 여름에나 가능하게 된다. 소련군이 독일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소련군에 의한 强姦(강간)이 수백만 건이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쇼킹이 아닐 수 없다. 독일 나치는 독일 민족의 순수성, 우수성 등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하고 있었는데 승리의 여신은 분명 독일 편이 아니었던 듯 싶다. 아니 여신의 보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 전쟁 중 동유럽 국가들 중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폴란드는 전쟁 기간 내내 런던의 망명 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다. 런던 망명 정부를 중심으로 소련이 반격으로 국면 전환을 할 때 폴란드 국내에서 독일군에 맞서 봉기를 일으키지만 무참히 실패하게 된다. 망명 정부는 폴란드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과의 관계는 원활하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함께 현재, 유럽의 정치 지형에서 폴란드의 입지는 미국과의 이해관계에 가장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그 밖에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이 모두 독일과 연합한 추축국으로서 소련과 싸웠던 패전 국가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쿠릴열도 문제가 러시아에게 중요한 것은 블라디보스톡 등으로부터 오호츠크해로의 진입이 차단되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된다는 데 있었다. 때문에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열도는 일본보다는 러시아에게 더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 그곳은 러시아의 팽창을 막아야 하는 또다른 절체절명의 전략 요충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은 러시아, 중국, 한국의 태평양 진출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 전략적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이래 저래 한국은 미국의 안보 우산을 필요로 한다. 

저자 제프리 로버츠는 대조국전쟁을 진두 지휘하며 승리로 이끈 스탈린의 능력과 리더십을 전쟁에 대한 기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종전과 함께 동서 냉전의 심화 속에서 스탈린 체제의 경직화 그리고 그 숙청에 대한 서술은 조금 소극적이다. 종전후에도 스탈린은 영미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이끌고 싶어 했다고 저자는 주장하지만 실제 서방과 제3세계 국가들에 공산주의 체제의 수출을 도모함과 동시에 서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논리는 형용모순처럼 들린다. 

스탈린은 처칠 또는 루스벨트의 관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대단히 솔직하고, 명민하며, 겸손한 인격을 갖춘 지도자로서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당연히 소련의 국익을 위해 노심초사한 지도자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빌 클린턴이 푸틴을 처음 만난 뒤 대단히 스마트한 인물이라 평했던 어떤 미디어 매체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스탈린에 대해 궁금했던 것은 푸틴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의 연장선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 사회는 항상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적이고 위협이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그 위협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자유 민주주의적이었고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 부자들의 존재론적 위협도 사라지게 되었다. 거칠 것 없이 신자유주의라는 전지구적 세계질서의 방침을 결단하고 실행하게 된다. 물론, 한때 소련이라 불리던 소비에트 제국 역시 러시아 제국의 팽창주의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는 슬픈 영광에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의 음악, 문학 등 문화에서 느껴지는 哀調(애조)는 그런 역사 때문인 것 같다. 그 슬픔이 빚어내는 찬연한 아름다움은 너무나 극적이고 유혹적이라 차마 떨쳐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