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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사

by neofluctus 2024. 1. 28.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너무나 저명한 일본의 동양사학자다. 그의 사학은 사회경제사라는 토대 위에 근거한다.책 후미의 跋文(발문)에 따르면 그것을 景氣史觀(경기사관), 다시말해 화폐의 유통량에 중점을 둔 경제사관이라고 부연한다. 중국사 대신에 동양사라는 지칭은 동아시아 대륙의 역사가 농경의 정주민과 북방 유목민이 서로 拮抗(길항)하며 만들어낸 역사이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문화적 일원론을 주장한다. 인류 문명의 기원은 다양한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중근동의 서아시아, 한 곳으로부터 발원했다는 것이다. 수메르 문명을 시작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이 동서 방향으로 전이, 유럽과 인도, 중국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시대구분을 이해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서양에서는 고대, 중세, 근대라는 삼분법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반해 그는 고대, 중세, 근세, 최근세사라는 사분법을 주장한다. 당연히 고대는 중근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지만 근세사는 중국에서 제일 일찍 전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최근세사는 산업혁명과 함께 한 18세기 말 이후 유럽의 역사를 말한다.

근세사라 함은 고대의 부활 또는 회귀와 같은 르네상스 시기를 말한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보통 삼국지 시대로 잘 알려진 후한 멸망 이후, 魏晉南北朝(위진남북조) 시대부터 唐末(당말)까지를 중국의 中世(중세)로 파악한다. 이 시기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가 宋(송)에 이르러 획기적인 생산력의 증대를 통해 인구가 한나라 시기 약 1억명 수준으로 다시 회복했으며 이때를 근세사의 기점으로 파악한다. 중국 고대가 서아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추정한다. 마찬가지로 송대 이후의 동양사가 서아시아, 유럽의 역사에 상당한 임팩트를 주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몽고제국의 세계 지배를 생각하면 이것은 어렵지 않게 않게 납득할 수 있는 추론일 것이다. 

주자학의 창시자 주희는 공자의 해석에 있어 원전 자체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공자에 대한 그의 그런 자의적 해석이 이후 동아시아 역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우리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있다. 이 주자학의 殘滓(잔재)가 한반도에는 19세말까지, 아니 어쩌면 21세기에도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커보인다. 실질과 이해를 무시하고 허망한 대의명분에 집착하는 악습은 모두 주자학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먼저 읽었던 오카모토 타카시의 ‘중국 근대사’에서 양자강 유역의 수전농업을 통해 송대에 비약적 농업생산력의 증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송대가 근세사의 출발점이라는 이론을 순순히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송-원, 명-청은 송대 이후 질적인 변화 없이 그 역사가 평행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이라고 한다. 

유럽도 중세는 게르만족의 이동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서양 중세시대 동서간의 교역을 중개했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은 이와 같은 동서양의 교류와 역사 전개가 무관하지 않음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19세기 제국주의적 팽창 이래 인종적 우월감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서양 패권이 이런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때까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조금 도약을 해서 20세기 초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남만주 철도에 대한 미국의 중립화론을 일본이 거부하면서 시작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표현을 빌면 일본이 1차 대전에 연합국 편에 서서 벼락부자가 된 것을 미국과 영국이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영국은 인도, 미국은 남미라고 하는 안정적 식민지(명목상이 아니라 실질적 의미에서)가 있어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반면 독일과 일본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의 중국에 대한 배타적 권리에 더욱 집착했었다는 주장이다. 황화론과 함께 일본인에 대한 미국 이민에 대한 금지 그리고 미국 재류 일본인들에 대한 재산권 침해 등이 있었던 것은 이 시기의 인종주의racism의 실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북 통일에 있어 한국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남북통일에 부정적 기류를 흘리며 연방제 통일안을 제시한다던가 아니면 다행히 우리의 소원대로 통일이 된다 해도 만주에 있어 일본의 선례는 앞으로 그 지역에 통일 한국의 이해를 관철하는데 있어 수많은 장애의 전조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거장만이 쓸 수 있는 통사의 모범처럼 보인다. 마치 수필을 써내려 가듯이 가벼운 터치로 중국의 全史(전사)를 개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