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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1815~1914:The Pursuit of Powers

by neofluctus 2024. 1. 25.

이 책의 原題(원제)는 The Pursuit of Power; Europe1815~1914이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유럽의 역사를 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 리차드 에반스는 아주 저명한 독일사 연구자이며 1947년생으로 지금까지 18권의 책을 쓰고 역사연구에 대한 공로로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거의 천 페이지에 육박하는 내용이지만 워낙 다양한 주제와 사건을 언급하고 있어 때로 일정 부분은 너무 성글게 묘사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 시기 100년은 유럽의 ‘근대’라는 개념에 정확하게 딱 들어 맞는 역사적 시간이 분명하고 그 만큼 이 시기를 압축적으로 개관하기에는 대단히 좋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21세기 현재 시점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19세기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단절적 시공간과 기묘하게 접착되어 있다는 느낌은 ‘그래도 다행이야’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나폴레옹 몰락부터 세계1차 대전까지의 시기는 유럽에서 대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시기로 평가한다.  유럽 諸國(제국)은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이후 프랑스 혁명과 같은 사회적 변동을 막고 국제적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를 중심으로 ‘비엔나 회의Viena Congress’를 갖는다. 이 비엔나 회의는 유럽 諸國(제국) 지배계급들의 일종의 반동적 연대라고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48년 혁명’을 계기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1789년 혁명’과 달리 확실히 프랑스 국경을 넘어 전유럽으로 확산이 된다. 이때 메테르니히도 영국으로 망명 하게 된다. 이것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켜 ‘민주화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된다면 급진적 변화 대신 점진적 민주화가 전개되는 역사적 과정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도 썼기 때문인지 특히 7장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사를 상대적으로 자세히 서술했다. 여성의 참정권이 유럽에서 일반화되는 것은 2차 대전 전후 사건이다. 여성의 참정권은 이 점진적 변화의 대표적 예인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혁명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계급적 각성만큼이나 민족주의적 각성도 촉발시키는 사건이었다. 전유럽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에 낭만적 혁명적 에너지를 분출시키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민족주의가 유럽의 평화를 깨고 세계 전쟁으로 확산되는 인화성 강한 매우 폭발적인 연료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국뽕’이라고도 표현되는 과도한 민족주의의 ‘전형’은 이 시기에 연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이 시기에 유럽에서 산업 혁명이라고 하는 또 다른 맥락의 대사건이 일어난다. 18세기 증기기관과 같은 기계적 측면에서의 혁신을 1차 산업 혁명이라 한다면 19세기 후반의 과학을 기반으로 한 산업혁명을 2차 산업혁명이라고 규정한다. 또,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허버트 스펜서 같은 이에 의해서 사회진화론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이 시기 중산층을 비롯 서유럽의 백인들은 인종적 우월감에 도취 되어 그 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산업혁명과 민족주의는 일종의 시너지를 가지면서 제국주의 식민지 확보 경쟁에 나서게 된다. ‘제국주의imperialism’이라는 단어는 1870년대에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식민지 경쟁에 참여하는 유럽 국가들의 인민은 이 ‘제국주의’라는 표현으로부터 차오르는 국뽕에 모두가 탐닉하고 있었다. 이 시기 서유럽 백인 국가들은 세계사(다른 말로 세계 지배)의 정점에 서게 된다.  

한편, 대서양 양안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이것은 다시 아프리카 내륙이라는 음지로 숨어들며 연명하게 된다. 산업혁명을 통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된 서유럽 국가들은 더욱 거침없이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지 경쟁을 가속화시키며 아프리카의 플랜테이션 농업에 노예노동을 통해 자본주의적 이윤을 극대화 시킨다. 흑인 노예는 아프리카 사회 자체의 구조적 문제라 21세기에도 단절되기 힘든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 보면 미국 흑인들의 운명이 가장 은혜로운 실존조건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독일 통일로 인해서 ‘독일’이라는 신흥 강국의 출현이라는 한 요소와 오스트리아, 오스만 투르크와 같은 구제국의 몰락으로 인한 지정학적 힘의 공백이라는 또 다른 요소 때문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약화로 발칸반도가 무주공산이 되면서 비엔나 체제 이래의 현상 유지status quo 국제질서가 깨지게 되는 것이다.

1895년 청일 전쟁은 유럽 열강들에게 ‘드디어’, ‘마침내’ “중국”이라는 만찬을 해치울 시기가 무르 익었음을 나타내는 시그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화단의 난(1905)’은 중국을 삼키고 소화시킬 수 없는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결정적 사건이 된다. 이 시기는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변부 국가가 중심국가로 떠오르는 역사적 변곡점이기도 했다.(에도막부가 도쿄에 열리는 시기는 이미 생산력에서 한반도를 크게 앞서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럽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재화시키고 그것이 사회발전의 동력을 더욱 가속화시킨 것이 제국주의 전쟁으로서의 1차 세계대전이라는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등치시킬 수 있는 개념이라고 확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 중국의 굴기는 19세기 독일통일에 비견할 수 있는 것처럼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의 진원지처럼 비춰진다. 그래서, 이것이 역사적 데자뷰가 아닌지 모두 경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가 독일의 국가자본주의와 너무나 그 성격이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