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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

by neofluctus 2023. 8. 6.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Aristotle’s Children- How Christians, Muslims, and Jews Rediscovered Ancient Wisdom and Illuminated the Dark Ages)"은 2003년 미국 뉴욕에서 출판되었고 한국에서는 그 이듬해 민음사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저자 Richard E. Rubenstein은 미국계 유태인으로 특히 종교적 극단에 의한 폭력과 충돌에 대한 역사연구를 하는 역사학자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근대역사를 바라보는 가장 유력한 관점 중의 하나는 동서문명의 충돌이라는 ‘틀’에서 그 성격을 규정짓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성과 과학으로 무장된 서양의 근대문명의 무력 또는 위력 앞에서 수천년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중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일본은 유일하게 비서구 국가 중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근대적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지만 결국 미국과의 전쟁에 패망함으써 서양 사회가 동아시아 사회를 압도하고 규정하는 역사가 현재의 미중 충돌 이전까지 지배적인 흐름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나는 80년대 학번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적 이념의 세례를 직간접적으로 받았던 세대라고 회고하게 된다. 그 민족주의가 사회주의적 형태로 배태胚胎된 배경에는 서양의 근대에 대한 열패감劣敗感과 선망羨望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80년대를 지배하고 통치하던 군부는 상당히 무식하고 우직하며 축재蓄財를 하는데도 참으로 뻔뻔스러웠지만 88올림픽을 치르면서 한국사회는 식민지와 분단,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들이 분명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치유되는 역사적 전환점에 들어서게 되었던 것 같다.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前近代性과 서양 사회의 근대성近代性을 더욱 객관화, 상대화 시킬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서양사회와 근대를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사示唆를 던져주는 책임에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스페인의 Reconquista에서 시작된다. 스페인이 위치한 10세기의 리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세계에 지배되는 땅이었다. 기독교도에 의해서 톨레도, 리스본 등이 재정복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서물들이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들에 의해서 발견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서양사회 근대의 서막序幕, 아리스토텔레스 혁명이 시작되는 역사적 시점이라고 본다. 이후 톨레도의 수도원장은 무슬림, 유대인 학자, 그리고 기독교 학자들을 총동원해 아랍어로 번역이 되고 나름의 주석이 붙어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모두 라틴어 등으로 번역하는 대역사大役事를 벌이게 된다. 가톨릭 교회는 이슬람 사회를 통해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서물들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스스로를 혁신하고 쇄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그 정점은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토미즘Thomism으로 집대성, 수렴收斂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부루조아들에 의해 건설된 근대의 국민국가들(National States)들은 중세를 암흑기라고 규정하며 중세의 성취, 중세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10세기 이후 중세 사회의 저류에서 흐르던 이 뜨거운 혁신의 모멘텀을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방기하는 전략을 취해 왔는데 그것은 교회의 권위와 윤리관이 자본주의 사회 부르조아들의 이해관계에 방해, 또는 장애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중세라는 ‘과거’에 대한 부정과 함께 ‘이슬람’이라는 문명을 폄하 또는 무시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서양의 근대는 오로지 이들 부르조아들에 의해서 이성에 바탕한 계몽과 과학적 혁신을 통한 유일무이한 성취였다는 역사적 서사敍事를 날조捏造하게 되는데 이교도인 이슬람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문명이 우회적으로 서유럽 사회에 전승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토대를 만든 것은 카톨릭 교회의 엄청난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방기放棄(Conscious Neglect)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만큼 이성과 신앙의 이원화, 분단은 서양의 근대 국민국가(Natioanl State)를 건설했던 세력들의 작위作爲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고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