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화심리학

by neofluctus 2024. 5. 6.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은 진화심리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매우 훌륭한 교과서 내지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대학 학부의 진화심리학 개론서의 역할은 물론, 전문가와 심리학에 관심있는 대중 모두가 그 대상이다. 또, 진화심리학이 대학의 필수 교양 과목이 되어야 하고 모든 학문의 저변이 되는 바탕 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야망도 내비치는 데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런 야심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 선택”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자연계에는 “자연 선택”에 위배되는 “성 선택” 혹은 “이타주의” 문제가 진화의 또 다른 기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녀작 <종의 기원>에서는 여러 논란을 의식해 인간 진화에 관한 언급을 자제했지만 두 번째 책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던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버스는 인간의 ‘성 성택’에 대한 연구에 정통하다고 위키피디아가 밝히고 있다.

‘심리학’이란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고 “진화심리학”이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찰스 다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하며 다윈의 “자연 도태”와 “성 선택”을 “리비도 이론”과 “죽음 본능”으로 치환했다는 견해를 밝힌다.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을 출판한 이후 심리학의 흐름은 정신분석학으로 갔다가 다시 20세기 전후 파블로프의 개실험과 같은 환경 결정론적, 기계론적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탈선했다가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다윈의 관점을 재발견, 진화심리학이 통합 심리학으로서 기초를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진화심리학은 두 가지 문제 의식에 대한 매우 강력한 시사를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마음과 그 기원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와 다른 하나는 인지심리학적 주장을 근거로 범용 인공 지능(Super Intelligence)을 전망하는 일부 과학계와 산업계의 청사진이다. 특히, 닉스 보스트롬은 <슈퍼 인텔리전스>에서, 레이 커즈웨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모두 인지심리학에 바탕을 둔 인간과 기술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또, ‘진화심리학’은 서양 철학의 인식론 문제, 즉 경험론과 관념론의 대치를 절충하고 종합하는 데도 중요한 과학적 촉매제가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칸트와 같은 사람이 주장했던 인간의 선험적 인식을 진화심리로써 풀어 설명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 지능 등에 대한 스캐닝을 통해 하드웨어에 저장할 수 있으며 인간이 로봇으로 진화하고 인간이 로봇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진화심리학에 의해 기각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아직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단정적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진화심리학은 상식적인 주장이라 설득력이 있다. 자연계의 선택 압력을 통해서 ‘적자생존’이 이루어진다는 진화론의 제1원리는 우리가 일상으로 마주하는 현실에서 충분히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인간의 진화심리를 규정하는 데 결정적 요소는 ‘성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인간 암컷은 포유류중 유일하게 ‘오르가즘’을 느끼며 인간 암컷만이 배란기를 수컷이 식별할 수 없게끔 은폐된 형태로 진화시켰고 이로 인해 ‘父(부)성 불확실성’ 문제가 생기며 “결혼제도”가 출현했다는 주장은 상당히 신박했하기만 하다. ‘결혼’이란 제도는 인간에게만 유일하며 소위 일부일처제와 같은 형태의 암수 결합은 전체 포유류종의 1~3%에 해당한다고 한다. 또, 고환의 크기와 섹스 파트너의 수가 비례한다는 관찰도 있다. 유인원 중 體積(체적)에 비한 고환의 크기는 고릴라>오랑우탕>인간>침팬지의 순서이며 실제로 섹스의 문란 정도와 정비례한다고 한다. 또, ‘부성 불확실성 문제’는 이종사촌(姨從四寸)과 같은 외척(外戚)과, 고종사촌(姑從四寸) 등의 친척 관계와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친척보다는 외척 관계가 더 돈독하다고 한다. 

‘성 선택’이론은 트리버스 등의 ‘부모 투자 이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인간을 포함해 일반적으로 출산과 양육의 책임은 암컷의 몫으로 진화해 왔다. 따라서, 섹스에 대한 암컷과 수컷의 단기적, 장기적 전략 차이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남녀 간의 갈등이 생긴다. 수컷은 가능한 더 많은 기회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어하지만 암컷은 양육에 필요한 자원 제공이 가능한 짝짓기에 우선적으로 집중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 입덧을 ‘기형아’ 출산을 막기 위한 진화론적 자기 방어 메커니즘이라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통계적으로 입덧이 없는 산모의 기형아 출산율이 10%대 인것에 반해 입덧 경험자는 3%대에 그쳤다고 한다. 한편, 진화심리학의 수많은 가설들은 다른 과학적 검증 방법과 마찬가지로 경험적 실증적 통계를 통해 확인이 된다. 하지만, 그 제한된 데이터의 수량은 또 언제든지 이런 가설들이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밖에 진화심리학은 상호적 이타성 이론, 부모 자식간의 갈등 이론, 성 간의 갈등 이론 등을 통해서 인간과 그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이론들은 체험적 또는 추체험적으로 상식적 합리적 가설들이라 여겨지며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이질감이 없다. 또, 심리학은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발달심리학, 성격심리학, 임상심리학, 문화심리학 등 다양하게 분지(分枝)해 있는데 저자는 이 모든 분야가 진화심리학으로 수렴되고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세기 찰스 다윈,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현대라는 시기를 연 3대 거인이라 소개되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프로이트의 이론은 찰스 다윈의 성 선택 이론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애 동의하게 된다. 다만, 생산수단의 변화(봉건 사회의 토지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으로)이라는 경제적 토대를 통해 정치적, 역사적 변화를 설명했던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적 역사 해석 방식은 훨씬 독립적이고 창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칸트, 헤겔의 철학과 같은 독일 관념론 철학의 영향이 크다. 칸트와 헤겔 모두 프로이센 국가를 이성의 현실체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칸트와 헤겔이 프로이센 국가를 그렇게 신성시 했던 것처럼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를 신격화했던 것이다.

진화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 또는 그 사회를 신성(神性)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대단히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서양은 신들을 의인화(그리스의 신화)하거나 인간을 신격화(그리스도교)하는 데 가장 능했던 逆說(역설)의 문명이다. 동아시아 사회의 유교는 (서양 근대의 계몽주의가 휴머니즘이라 부르는) 괴력난신을 부정하는 인본주의적 윤리, 도덕 체계를 2500년 전부터 구축해 왔고 이슬람은 예수와 같은 절대자와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고 연결하는 중매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과학과 근대 사상은 서양 사회가 여전히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가 없다. 오늘도 내일도 서양에 대한 불평과 불만은 가득하겠지만 이들의 생각과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빛은 동방이 아니라 서방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  (0) 2024.05.05
지금, 다시 계몽(Enlightment Now)  (0) 2024.05.02
빈 서판(Blank Slate)  (1) 2024.04.28
종의 기원(동서 문화사)  (0) 2024.04.25
브로카의 뇌  (1) 2024.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