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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동서 문화사)

by neofluctus 2024. 4. 25.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초판이 나왔다. 그리고 1862년에 이 번역본의 텍스트가 되는 6판이 인쇄되었다. 그리고 내가 읽은 동서문화사의 ‘종의 기원’은 송철용 선생이 번역했다. 상당히 꼼꼼하게 잘 된 번역이라고 평하고 싶다.

다위니즘Darwinism의 핵심은 Natural Selection(자연선택)이라는 개념에 있다. 그런데 송철용 선생은 자연선택이라는 중립적 용어 대신 自然淘汰(자연도태)를 선택했다. 자연선택이라는 단어에 비해 자연도태는 훨씬 진화의 본의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쉽게 해준다. 왜냐하면, 설사 진화론이 궁금하다 하더라도 실제 이 찰스 다윈의 원전을 읽어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책의 핵심을 보다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는 용어로써 자연도태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는 진화론을 자연선택이라는 용어 대신 ‘자연도태’ 또는 ‘적자생존’으로 배웠던 것 같다.(물론, '도태'란 표현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불편한 말이긴 하다)

 淘汰(도태)라는 단어는 쌀 일 ‘도'일 ‘도’자를 사용한다. “쌀을 일다”라는 말이 요즘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精米(정미)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방앗간에서 나온 쌀에 돌이 많이 섞여 있어 밥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물에 쌀을 담근 뒤 ‘조리’를 사용해 돌을 일어 내야만 했었다. 따라서, “일다”라는 동사는 불순물을 걸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 한자사전에는 “물건을 물에 넣고 일어서 좋은 것만 골라내고 불필요한 것을 가려서 버림.”이라고 ‘도태’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自然淘汰(자연도태)는 자연이 주체가 되어 좋은 것은 고르고 불필요한 것은 버린다는 진화론의 핵심 개념을 보다 명료하게 전달해 준다. 

‘자연’이 주체가 된다는 의미도 중요하다. 다윈이 살던 시대는 생명의 기원 또는 종의 기원에 대해 Saltation(도약설;라틴어 saltare는 점프, 도약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이론이 지배적, 압도적이었다. 이 말은 신이 주체가 되어 인간을 포함한 생물을 모두 창조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에 자연이 스스로 선택 또는 도태를 통해 생명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기독교의 도그마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었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이미 20년 전부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 개념의 초안을 잡고 있었지만 알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자신의 이론과 똑같은 진화론에 대해 학회 논문 발표 가능성을 문의했을 때야 비로소 자신의 이론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마음 먹는다. 월리스와 함께 공동 논문을 발표한 뒤 1년 후 이 방대한 저서 ‘종의 기원’을 출판하면서 찰스 다윈은 “살인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출간한다”고 쓰고 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천오백 년 이상 서양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의 교리가 아마도 이 진화론에 의해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실제 19세기 후반 성공회가 상당한 행정 권력과 특권을 국가에 빼앗기며 영국은 세속 국가화 된다). 그 18세기 이래 수많은 계몽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아이작 뉴턴의 물리 법칙,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인류는 분명 새로운 국면의 정신 세계로 진입했다고 봐야만 할 것이다. (2009년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성공회는 진화론을 박해한 것에 대해 사과 성명을 냈고, 교황청 과학원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올바른 과학적 가설로 인정하면서 인간 의식은 일정 순간의 비약이 있었다는 의견을 발표했다고 한다)

‘종의 기원’은 19세기 중반에 나온 책이지만 20세기 혹은 21세기 나온 그 어떤 과학 논문보다도 그 논증이 치밀하다. 사육과 재배를 통해 나타나는 변이들을 인위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으로부터 자연계에서의 변이와, 자연 선택과 도태를 유추한 뒤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情緻(정치)한 관찰과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입증한다. 자연 선택이 인위적 사육 및 재배와 다른 것은 엄청난 시간의 스케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지질학적 논증을 포함한다. 찰스 다윈은 비글호의 항해 이후 생물학자가 아니라 지질학자로서 처음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찰스 다윈 뿐만 아니라 당시에 수많은 내추럴리스트[naturalist;당시에는 식물학, 동물학, 지질학 등 관련 학문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아 관련 연구자들을 모두 내추럴리스트로 통칭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한 학문을 博物(박물)학이라고 번역하고 그 연구자들을 박물학자라고 했다. 박물관이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비롯된다]들은 “자연에는 비약이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자연에는 ‘창조론’과 같이 어느날 불쑥 생명체가 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의 종은 시공간의 변화 속에 수많은 변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도태와 선택을 통해 계속 진화한다는 것이다. 생명 현상은 창조가 아니라 진화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 변이와 자연선택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칼 세이건은 '돌연변이'를 진화론의 중요 개념으로 설명했던 것 같은 데 그것은 자연 선택과 도태라는 점진적 광대한 타임 테이블에 수렴되는 대단히 부분적 종속적 개념일 뿐이다. '돌연변이'에 대한 강조는 자연 선택과 도태에 대한 개념에 혼란을 줄 수 있을만큼 중요하지도 결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지구에서 생명의 시작은 지구 탄생 약 10억 년 후 무기 분자가 유기 분자로 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포의 자가 분열 또는 증식, 性(성)분화와 유성 생식으로의 진화, 식물과 동물의 분화, 수상 생물과 육상 생물의 분화…. 호모 속이 약 500만 년 전후에 출현한 것 그리고 약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으로 보아 진화의 시간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것은 약 165년 전 사건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기관 중 가장 복잡한 ‘눈’의 진화 과정을 하나의 신경 세포가 빛에 반응하면서 오늘날 인간의 눈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찰스 다윈은 인간의 마음이 진화했다고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찰스 다윈의 논증이 치밀한 것은 학문적 완벽성으로서만 설명되지 않는다. ‘살인의 고백과 같다’고 했을 때 그만큼 그의 진화론이 갖는 정치적 민감도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마저 진화의 산물이라는 예민한 주장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아담 스미스의 사상과도 같은 궤도 선상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번역자 송철용 선생도 그렇게 밝히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을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동감sympathy과 타인들의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한다. 중세 시대(프란시스 베이컨, 로저 베이컨 등) 시작해 존 로크에서 본격화되는 영국의 경험론 철학에 굳건히 뿌리 내린 사상이다.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 특히 자유방임주의 시장 경제를 ‘자연 선택’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발상은 상당히 유의미해 보인다. 

도덕 감정론이 보여주는 윤리학은 당위로서의 윤리학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관찰한 결과 오랜 시간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이 진화하며 만들어낸 진화적 결과물이라는 통찰이었다.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연관 짓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자유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示唆(시사)를 주는 것 같다. "자연에 도약이 없다"는 명언은 영국 민주주의를 프랑스 혁명 또는 러시아 혁명과 같은 정치적 격변과도 구분 짓게 해준다. 진화론은 점진적 변이와 종의 분화를 말한다. 케인즈 역시 정치적 변화에 대해 이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주자학과 같은 철학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접근 방식이 그 반대의 극단에 서 있다. 성선설에 바탕한 正閏論(정윤론)이라고 하는 사회적, 역사적 잣대는 도덕 감정론을 당연히 이단의 사교로 단죄할 것이 틀림 없다. 또, 기독교 윤리학이 신의 계시에 의한 것으로 파악했던 것과 다르게 성리학은 대단히 인본주의적이다. 19세기 조선 사회는 여전히 성리학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사회였던 것을 생각하면 성리학이 우리 역사의 비극적 결과들과 얼마나 깊은 인과관계가 있는지 충분히 헤아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알프리드 러셀 월리스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헬레나 크로닌의 “개미와 공작”을 보면 크로닌은 자연선택 이론에 대한 공동 창시자로서 찰스 다윈과 월리스의 이름을 항상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녀의 유별난 공동 호명 집착도 특이하지만 월리스 본인은 정작 말년에 자신의 진화론을 포기하고 죽은 이들과의 통교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신비주의를 추구했던 것 같다. 일종의 臨死(임사) 체험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거의 완벽한 이론으로 보인다. 다윈 사후 20세기 21세기 연구 결과는 모두 자연 선택과 도태에 의한 진화론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성선택에 있어서는 다윈보다 더 다윈적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했던 알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왜 이 완벽한 과학적 교의를 배신?했던 것일까?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과학사에 이처럼 숨겨진 일화가  불러일으키는 호기심 또한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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