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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

by neofluctus 2024. 4. 16.

이 책은 2021년에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2023년 김영사에서 나왔다. 김명주 씨의 번역은 아주 훌륭했다. 때때로 譯註(역주)를 달아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친절함 등은 모든 번역자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모두다 잘 아는 것처럼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베스트셀러를 통해 한국 대중들에게 대단히 익숙한 과학자다. 이 책을 선택한 배경은 이 책의 제목이 앞으로 과학책 독서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향과 함께 어떤 책들을 고르면 좋을까하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 사항에 있었다. 그런 바램은 충족된 것 같고 거기에 더해 어떤 쟁점에 관심을 가져야할지도 대충 알게 되었다.

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이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 선택은 적응을 통해 실현이 된다. 다만, 진화의 과정에서 성 선택sexual selection과 이타주의alturism의 개념은 자연 선택 개념만으로는 충분이 설명이 되지 않았는데 리차드 도킨스가 이타주의 문제를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서 잘 풀어낸 학문적 공로가 지대했다. 

성 선택 이론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다. 요지는 자연에서는 미인 콘테스트를 통해 수컷이 성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컷들이 미남 콘테스를 하고 암컷들이 성 선택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공작새들의 멋진 꼬리, 그리고 바우어새가 훌륭한 둥지를 꾸며 암컷 새를 유혹하는 행위 등을 예시한다. 자연 선택 입장에서 이런 행위의 과시성, 자원의 비효율적 소모 등은 불합리해 보이나 그것이 진실이었다. 기본적으로 유성 생식을 통해 자손을 재생산하는 동물들은 이와 같이 雌雄(자웅)의 다양한 교배를 통해 엄청나게 다른 형질들을 유전시키게 된다.

물리학자들이 생물학자들을 약간 하대하는 과학계의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다. 물리학은 기본적으로 펜과 인간의 머리로만 가능할 것이다. 반면, 생물학자들은 오지에서 오랜 시간, 온갖 생명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생명 현상을 연구해야만 한다. 이곳에서도 일종의 사농공상과 같은 위계 의식을 발견하고 可笑가소하지 않을 수 없다.

19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고 난 뒤 그로 인한 사회적 역사적 파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그가 원고를 완성하고 난 뒤에도 20년이나 시간을 끌었던 것 역시 이런 사회적 파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100년이 더 지난 다음 그의 주장은 수많은 과학적 실증으로 더욱 더 견고해지고 있다. 그 요체는 단세포 생명은 물질에서 시작되었고 그 단세포 생물이 모든 동식물의 시원이며 인간 또한 그 연장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쥐, 고양이, 개 등 우리 주변의 동물들은 인간과 대부분의 유전자가 일치하며 침팬지는 진화의 계통수에서 고릴라보다 인간과 더 가깝다는 사실 등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여전히 기독교적 세계관에 지배되고 있던 사람들이다. 동물과 인간의 친연성은 고사하고 인종간의 차별, 남녀 간의 차별 의식이 너무나 뿌리 깊었던 사회에서 침팬지와 인간이 진화론적 사촌 관계에 있다는 주장은 가히 충격을 넘어 혁명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진화 심리학이 좀 더 관심을 끌었다. 보통 뇌의 구조를 살필 때 변연계와 같은 구뇌old brain와 대뇌 피질new brain을 구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진화 심리학은 인간의 본능과 문명적 마인드라는 단순 이원론말고도 다양한 주제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스티븐 핑커의 언어학 등이 이런 진화 심리학 연구의 한 분야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의 언어학은 칸트와 같은 독일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선험적 인식론에도 연결시킬 수 있는 주제가 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또 최근의 AI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될 것이다.

한편, 사회 과학이 정치적 진영간의 塹壕(참호)전장으로 되거나 그런 긴장 관계에 있을 수 있는 학문 영역이란 생각은 했지만 자연 과학도 그와 못지 않으리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적어도 여기서 유신론과 무신론간의 첨예한 대립이 사회 과학의 좌우익 갈등 못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창조’란 말을 비교적 자주 사용하는 데 리차드 도킨스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용어의 선택은 무지 몽매, 반과학적, 반근대적 표상의 전형이었다. 리차드 도킨스는 무신론자라기 보다는 거의 反(반)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졌다(부언하면, 반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반신론적이다).

지금 이슬람 사회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는 나라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서도 인구의 45%는 창조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지지한다고 한다. 영국은 헌법에서 성공회가 국교인 나라다. 하지만, 미국은 헌법에서 정교의 분리를 명문화한 근대 최초의 공화국이었다. 영국, 서유럽보다 미국 사회가 더 반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존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는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가 있는 스위스의 CERN연구소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존 브라운은 살해되는 여주인공 아버지를 통해 “종교와 과학이 궁극적으로 화해할 시간이 올 것이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존 브라운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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