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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공작

by neofluctus 2024. 4. 10.

저자 헬레나 크로닌은 1942년생으로 런던 정경 대학의 자연 철학 및 사회과학 센터의 공동 학과장(co-director)을 맡고 있다고 소개된다. 이 책은 1991년에 나온 책이고 한국에서는 2016년에 번역이 되었다. 상당한 시차를 두고 국내 번역 출판되었다. 그녀는 엄밀하게 자연과학자라기 보다는 자연철학자로 분류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양 근대 사회에서의 학문 전통은 한국의 문과, 이과와 같은 분절적 분단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철학자 또는 과학자의 경계를 확정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해 보인다.

21세기의 세계질서는 수 백년째 여전히 서양 사회가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서양 사회 힘의 근원은 거의 확정적으로 자연과학에 대한 인식 체계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독서의 방향을 이들 자연과학에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화론은 서양의 자연과학 중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과학과 상관성을 갖는 영역처럼 보인다. 그리고 진화생물학의 극적 전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단으로 한다. 찰스 다윈이 1859년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한 배경은 자신이 20년전 구상한 내용을 알프레드 마샬 월리스라고 하는 젊은 연구자가 자신과 똑같은 연구 아이디어로 그에게 편지로 보낸 데 있었다. 이들의 연구는 “생물의 진화는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명제에 함축된다. 그리고 그 자연 선택 적응adaptation이라는 과정을 통한 것이다. 

근대 유럽에서의 사상적 조류는 대륙의 관념론과 브리튼 섬의 경험주의적 전통으로 갈린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개인적으로 영국이 경험과 이성의 종합을 강조한 사유 체계가 근대 사회와 앵글로 색슨 중심의 세계 질서를 창조해낼 수 있었던 힘의本領(본령)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생각들이 “自然(자연)”을 “있는 그대로” ,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이론화하는 데 더 효과적이고 충실했던 것 같다. 이런 사유의 전통이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맬서스의 ‘인구론’ 그리고 다윈과 월리스의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을 연속적으로 발견하게 된 배경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다윈의 ‘종의 기원’이 씌어지던 시기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라고 하는 시대적 특수성을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빅토리아 시대란 영국 제국주의가 정점에 이르던 시기이고 남성중심적 가부장주의가 그 중심에 있었던 사회였다. (언젠가 이 빅토리안 시대의 윤리, 사회의식 등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도 자연 생태계의 양육 강식과 같은 생태 질서를 적용해서 관찰하고 연구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식의 치환 과정이었을 것이다. 21세기에도 “인간 및 인간 사회는 진화의 산물이다”라는 명제를 후퇴시킬 수 없다면 19세기 이들 영국인이 가지고 있었던 인종주의, 제국주의적 편견은 오늘날에도 결고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왜 그들이 그런 생각에 규정되고 지배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과학이란 자연 또는 사회를 이해하기에 앞서 윤리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다.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인과관계를 파악해 그 현상이 부정적이라면 그 결과를 수정하고 긍정적 결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 목적이고 유용성이다. 그 목적에 충실하고 성공적이었던 서양 사회가 동아시아 사회를 규정하고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엠마뉴엘 토드는 프랑스의 근대를 추동한 것은 이웃한 프로테스탄트 게르만족 사회의 발전이였고 프랑스는 그들과의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 때문에 근대 사회로의 발전에 동참할 수 있었다고 프랑스의 근대를 설명한다. 

또, 신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지만 도그마에 기반한 서양 기독교 신학은 근대 과학에 의해 완전히 해체되었다는 결론에도 이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 역시 완고한 교리를 과학적 성과에 대립시킬 때는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오히려 미래의 신학은 기독교의 성경이 아니라 ‘과학’을 그 대상으로 해야만 할 것이다. 그 새로운 경전은 고정된 것도 확정된 것도 아니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찰과 발견으로 개정판을 거듭하는 텍스트일 것이다. 기존의 동양적 사상 전통으로는 서양의 근대 사상을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대 십육국 시대 불교를 수용하던 열정 이상으로 동양 사회는 서구 근대 사상을 열렬히 수용하고 재창조해 낼 때 비로소 서양 사회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 그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계시”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신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법률적 객관적 효력?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헬레나 크로닌의 책 “개미와 공작”은 다윈주의의 자연선택과는 다소 배치되는 개념인 ‘성 선택sexual selection'과 개미와 같은 사회적 동물의 ‘이타주의alturism’를 어떻게 어떻게 해석해 낼 것인가하는 문제에 관한 책이다. 수컷 공작의 지나치게 화려한 꼬리 깃털은 너무 낭비적이라 자연 선택의 효용성과는 상치되는 것처럼 보였다. 다윈 자신은 공작 깃털의 화려함을 보고 암컷들이 수컷을 선택한다고 했지만 그 이상 내용과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월리스는 빅토리아 수컷의 자존심으로 수컷이 아닌 암컷이 주도권을 갖는다는 발상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자연 선택 개념 안에 성 선택 이론을 우겨 넣으려 했다. 월리스는 자신이 다윈보다 더 다윈적이라고 자처했다고 한다.

또 개미와 같은 사회적 동물의 이타성 역시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개념 역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그 부자연스러움이 해소된다. 즉, 불임 개미 등은 직접적 생식은 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동일한 상당 부분의 유전자가 조카 등에게 상속이 되기 때문에 그런 희생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또 인간 사회의 결혼 제도 역시 일부일처제 사회보다는 일부다처제 사회의 유형이 훨씬 압도적이라고 한다.(이 책에서 예시된 사례를 보면 일부다처제가 800여건 이상, 일부일처제 사회는 150여건 전후, 일부다처제 사회는 4건이라고 한다)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아버지 역할은 외삼촌들이 대신한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문제 역시 이런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빈부 격차의 확대와 이혼률 증가 등은 서로 상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적 환경은 일부다처제에게 적합?하게 변화하는 데 법제적으로는 일부일처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통제 폐지와 호주제의 개정 역시 이런 식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가해진 약간의 수정 조치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친족 결혼의 범위 축소를 법제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자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사회가 봉건적 특성들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읽혀진다. 특히, 의사들의 파업은 한국 사회가 반자본주의, 반자유주의적 봉건 사회로 퇴행하는 조짐의 대표적 사례로 보인다. 반자본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에 대한 도전, 반 시민 공동체적 탐욕과 파렴치함에 극단적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의 발전은 서구 자본주의를 일본식 근대화 모델을 매개로 적극 수용해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 사회는 북한의 항일 빨치산에 정통성을 두는 역사관으로 현대사를 재단하고 있다. 과학적 사고와는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중적 광기를 매일 매일 실감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것은 한국의 미래에 너무나 불길한 예조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자연과학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화두와 밀접한 문제 의식을 제기하는 20세기 후반의 저작이다. 한국 사회의 지적 수용의 시차lag time를 반영하는 부분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화생물학에 익숙한 전공자들이 아니면 책 내용을 그대로 좇아가기가 부담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영어의 수사학적 전통 때문에 그 빈정거리는 말투와 산만함으로 내용 파악을 어렵게 만드는 것도 있다.

인터넷 상에 국내에 서평도 별로 없지만 그나마 페퍼민트인가 하는 매체의 서평은 뉴욕 타임즈의 서평과 상당히 유사하다. 유튜브에서 최재천 박사가 이 책을 권하기도 했던 것 같은 데 그 사람의 젠 체하는 스타일 역시 참 거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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