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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로또: 왜 DNA가 사회적 평등에 중요한가?

by neofluctus 2024. 2. 2.

에코 리브르라고 하는 출판사에서 2023년 2월에 번역 출판되었다. 미국에서는 2021년에 세상에 나왔다.

먼저, 번역 내용에 대해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불편함과 어색함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거의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품질의 번역은 정확한 정보의 전달을 막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경제적 선택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검색을 해보니 번역자는 유전학 관련 전공자인 것은 맞지만 번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갖추었으면 좋을 소양은 상당히 부족한 사람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마찬가지로 출판사도 편집자가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특히, 두 개의 파트 중, 1부는 마치 대학원생이 아르바이트를 한 것 같이 무리하고 어색한 한글 직역이라 참고 읽어내는 것이 여간 곤혹스럽고 민망한 일이 아니었다. 

저자 캐서린 페이지 하든은 상당히 젊은 유전학자다. 그의 프로필을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하고 난 뒤 영화 배우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확인하고는 그녀의 글쓰기에 대해 갖고 있던 약간의 분노는 금새 눈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University of Virginia 홈에이지에서

단순히 말하면 젊은 시절, 사회는 평등해야만 한다고 믿었고 그것이 정의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은, 자연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쪽으로 생각의 추가 옮겨 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자연의 질서는 우연이 아니라 유전과학을 통해 입증되는 인과관계가 있는 창조의 질서?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현대 유전학은 소위 merit라 표현되는 개인의 특별한 능력과 자질이 우연한 유전적 조건의 결과이며 ‘運(운)’임을 밝혀 내고 있다. 하지만, 근대 과학의 성과로서 초기 유전학은 우생학 또는 나치즘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1869년 찰스 다윈의 사촌이자 ‘우생학euginics’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프랜시스 갈톤Francis Galton은 저서 ‘천재의 유전학Hereditary Genius을 출판했다. 골턴의 책은 수백 쪽에 달하는 족보로 이루어져 있으며 명성eminence이 생물학적으로 유전되어 영국의 계급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과학, 사업, 법률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족보에 있는 이들 훌륭한 인물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천재의 유전’은 갈톤의 1889년 ‘자연 유전Natural Inheriediatry’이라는 책과 함께 ‘유전hereditary’연구를 통해 영국 사회의 지배계급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특권적 지위를 합리화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한편, 계급적 차별적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유전학이 밝히는 과학적 진실을 외면한 채 모든 인간의 차이는 후천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적 조건만을 조정하면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저자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좌파에 속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평등’이 아니라 ‘공정’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공정’의 개념이 ‘평등'과 다른 것은 유전적 차이로 인한 인간 능력의 차이, 결함이 있는 개체, 소수자minor 존재를 인정한 다음에 가능하다고 본다. 이 공평의 개념은 ‘안경’의 비유를 통해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저마다 유전자의 차이로 상당히 약한(다른) 시력을 갖고 태어난다. 근대 광학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이런 결함은 사회적 약자가 되는 피할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현대 사회는 ‘안경’을 통해 이런 유전적 퇴행을 충분히 교정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유전자 우열에 대해서도 국가 또는 사회의 개입을 통해서 불균등을 해소하는 것이 ‘공정’의 실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평등과 공정의 개념의 차이 by squior

앞서 언급했지만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2부가 그녀의 이런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고 1부는 2부의 결론에 이르는 방법론과 도구 등 다소 테크니칼한 내용들을 언급하고 있다. 굳이 1부의 번잡한 글쓰기와 정리되지 않는 용어 선택 등을 이 지면에 옮겨 그 혼란스러웠던 독서의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캐서린 페이지 하든의 주장은 앞으로도 상당히 주목해야만 할 진보적 정치세력의 정치이념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경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대해 거의 반 페이지를 할애 하면서 한국의 불평등한 사회현상을 좋은 예시로써 보여주고 있다.

2004년 통계에 의하면 중국 사회의 소득의 차이는 상위 20%가 하위 20%의 13배, 미국은 10배라고 한다. 한국은 2022년 기준 소득의 차이는 6배가 넘고 자산의 차이는 16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진핑의 권위주의 체제, 미국의 트럼피즘은 모두 이 같은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정치적 긴장과 불안의 원인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론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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