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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by neofluctus 2023. 12. 22.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해서 읽기 시작한 이래 아마존에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1996년 나올 때부터 너무나 유명한 책이었다. 진작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세상에 대한 시각이 좀 더 일찍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소회와 감상을 서두에 적지 않을 수가 없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상하며 이 책과 함께 가장 많이 거론되는 책이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終焉(종언)’일 것이다. 물론, 그의 책도 읽지는 못했지만 학창 시절 헤겔 철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대충 그의 관점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후쿠야마는 자유주의가 세계의 지배적인 이념이 되어 시장경제, 개인주의, 법치주의 등이 글로벌 문명의 왕좌를 차지하고 그 보편성을 주장할 것이라 전망한 반면 사무엘 헌팅턴은 그것은 한낱 환상에 불과하며 서로 이질적인 문명 간의 충돌과 갈등이 냉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간파한 것이다.

사무엘 헌팅턴은 기독교(카톨릭과 개신교), 正敎(정교), 이슬람, 유교문화권, 인도의 힌두교, 라틴 아메리카, 일본 등으로 세계의 문명을 구분하고 이들 문명의 중심국가들을 국제정치의 주전 선수들로 파악한다. 한국은 베트남과 함께 중국의 유교문명권에 종속시킨다. 사실, 이 주장에 대해서 異說(이설)을 달고 싶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보여준 행태 그리고 미래의 전망 속에서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낸다면 한국의 대중국 傾斜(경사) 내지 從屬(종속)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국제정치에서 한국이 주전선수는 아니지만 시나브로 후보선수로는 등록한 것처럼 보인다. 언제든 주전선수로 도약할 날을 기대한다.

아무튼, 2023년의 현재 상황을 너무나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대만유사의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같은 최신의 뉴스에서부터 발칸반도에서 종교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소련과 미국의 침공실패, 9.11 테러 등 그 어느 것 하나 거의 허점 없이 현대의 국제정치적 현상과 역사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툴 tool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사무엘 헌팅턴과 the Next Hundred Years의 저자 조지 프리드먼을 비교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지 프리드먼이 유대인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서양문화의 근원은 ‘기독교’라는 주장을 강하게 하지 못한다. 물론, 유대-기독교라고 雙(쌍)을 이뤄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주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미국의 주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사무엘 헌팅턴은 ‘중국’을 정확히 지목한다. (물론, 한 사람은 일본을 다른 하나는 중국을 그렇게 각각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그렇게 잘못된 假定(가정)은 아닐 것이다.)

서양은 20세기 전반기를 정점으로 그 영향력과 패권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수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이 독립한 상황 때문으로 이해가 된다. 반면, 중국과 이슬람이 서구문명에 대한 상대적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다. 이슬람은 그들의 폭발적인 인구성장과 화석연료 때문이고 중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경제적 성공이 자신의 문명에 대한 확신을 만든다(이런 확신을 assertion이라는 단어로 표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몰아낸 것은 범이슬람의 결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미국의 엄청난 지원이 있긴 했지만 이슬람에서는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1905년의 러일전쟁과 같은 역사적 모멘텀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길러진 범이슬람의 전쟁역량이 911 테러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인 들은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최근에는 좌파와 이슬람의 연대가 매우 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슬람은 기독교 또는 유대교와 같은 단일신을 숭배하지만 기독교 세계와는 대단히 이질적이며 가장 배타적인 유일신 신앙이다. 기독교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의 것’이라고 하는 세속주의, 정교분리의 대원칙이 있지만 이슬람은 政敎(정교)가 일치해야만 한다. 법률체계도 대단히 종교적으로 규율된다. 따라서, 법과 종교적 영역이 분리가 되지 않는다. 코란의 곳곳에서 異敎徒(이교도)에 대한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지하드;聖戰(성전)’를 종교적 사명과 의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슬람 세계에서 ‘근대 Moderniztion’라는 개념은 대단히 생소한 세계, 낯선 세계관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장에서는 문명간의 충돌로 인한 제3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시나리오를 묘사하기도 한다. 서방에 대항한 이슬람과 중국의 연합은 거의 常數(상수)처럼 보인다. 만약,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正敎(정교) 세력이 현재와 같이 약화되면 아르메니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이슬람 세력과 정교세력 간의 균형이 무너져 그 파장은 발칸반도, 북 코카서스를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확대될 수 있다. 때문에 러시아에게 일정의 지분을 부여하는 트럼프의 외교노선은 이슬람과 중국을 동시에 견제하는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우방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이 중국을 봉쇄(balance and contain)하겠다는 決意(결의) resilution와 실행력 commitment을 보일 때만 일본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면 한국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도 중국에 엎드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럽에서 찾아야 한다고 거듭 거듭 주장한다. 그리스 로마 고전문명, 기독교, 봉건제, 르네상스, 종교개혁, 민주주의, 개인주의, pluralism 등을 자신들의 중심적 문화적, 문명적 가치로 재확인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다양성을 수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문화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유럽과 미국에 대해 동시에 경고를 한다. 여기서, 서방과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정교 국가들의 정체성의 차이를 지목해야만 할 것 같다. 정교와 기독교는 같은 그리스도교이기는 하지만 이들 Orthodox 기독교와 서방은 문명적으로 공통점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러시아도 고전문명을 계승하지만 그것은 비잔틴을 매개로 한 것이었던 반면 서유럽은 로마로부터 직접 계승한 것이라 그것마저도 동일한 문화적 상속유산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본다. 특히, 200년간 몽고의 지배를 받았던 경험과 함께 르네상스, 종교개혁과 같은 역사적 경험의 부재는 동아시아인이 서구사회와 정교사회를 구분해서 바라볼 수 있는 분명한 인식의 경계선으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피부색만 같다고 같은 문명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와 서방은 완전히 다르다.”

냉전 이후 미국 사회, 미국 정치의 흐름은 사무엘 헌팅턴의 우려한 대로의 부정적 조류가 중심에 흐르고 있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이라 해석되는 Political Correctness등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같은 기독교적 도덕률을 상당히 瓦解(와해)시킨 것으로 보인다. 사무엘 헌팅턴은 미국의 제조업이 붕괴되고 금융자산에 기생하는 현재의 미국 경제구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만 더욱 치명적인 것이 문화적, 도덕적 정체성의 해체를 더 위험한 문명 몰락의 序奏(서주)라고 보고 있다.

미국은 특히 리비도가 충만했던 클린턴이라는 젊은 대통령 시절에 했던 수 많은 결정들이 미국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수많은 규제의 해제를 통해 금융위기를 불렀고 또 소위 다양성이라는 포용정책을 통해 제국의 통일을 도모했지만 헌팅턴은 오히려 그런 선택이 잘못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백인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문명과 가치관을 중심에 두고 다양성을 수렴시켰어야만 했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서유럽에서 발원한 기독교 문명국가라고 파악하기 힘든 나라가 되고 있다. 

미국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새롭게 생성되고 있는 경제적 기회들을 차지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라고 주장하지만 그것도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타문명에 개입하는 행태, 예를 들어 이라크를 침공하고 자유민주주의적 사회질서를 이식하겠다는 식의 오만 hubris 한 정책판단을 하는 것은 타 문명과 갈등을 증폭시킬 뿐 미국의 국익에 대단히 유해한 결과만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으로 인해 거의 3차 세계대전으로 연결되는 연쇄적 반응들이 묘사된다. 여기서 중국, 미국, 한국, 일본은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된다. 이제 다시 문명의 주도권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서 새롭게 출현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대만유사 등 현재 동아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다시 한번 냉철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