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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사A New World Begins: The History of the French Revolution

by neofluctus 2023. 12. 10.

2019년 12월에 발행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Jeremy Popkin에 대해서 구글링을 해보았지만 참 특이하게도 그에 대한 위키피디아 기사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현재 미국 켄터키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유대인 역사가 그의 전공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유대인 은행가 집안 ‘로스차일드 가문’이 부상하는 시기 또한 프랑스 혁명기에 해당한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대인에 대한 법률적 사회적 차별이 철폐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1789년부터18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통해 공화국 혁명 정부가 끝날 때까지 약 10년 간 초기 프랑스 혁명사를 상당히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 기본적으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개의 근대적 가치를 표상한다고 할 때 이 시기는 특히 ‘평등’이라는 가치에 더 방점이 찍히는 시기라고 봐야만 할 것 같다. 특히, 평등의 이념의 확대와 과잉이 개인의 ‘자유’를 끊임없이 침법하며 구속하는 통제체제로 변해 가는 역사의 典型(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20세기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실험은 예외없이 전체주의적 형태로 끝나 버리고 마는 역사의 선험적 전형이 된다. 그 반동으로서 나폴레옹의 쿠데타가 사회적 동의를 얻어 성공하게 된다.

이 책은 나 같은 대중들을 위해 쓴 책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어, 지명, 인명, 역사적 사건과 내용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며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했다. 특히, 미라보,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등이 사라지고 난 뒤의 과정은 거의 알고 잊지 못하던 역사적 전개라 더욱 생소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내가 프랑스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이 패션과 관광에 관심을 갖는 만큼 프랑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프랑스 혁명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근대사를 이해하는데도 아주 자세한 안내서였다고 평하고 싶다. 하지만, 루이 16세와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는 과정을 읽을 때는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마음을 졸이며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책을 두 가지 관점에서 읽었던 같다. 하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가 살고 있고 누리고 있는 근대사회를 열어젖힌 장대한 역사적 드라마로서의 ‘프랑스 혁명’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영국의 혁명 또는 근대화 과정과의 비교가 다른 하나였다. 첫 번 째 역시 미국의 독립혁명과 비교하면 또 흥미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가 있어 보인다. 미국혁명과 프랑스 혁명 모두 자연법 사상에 근거한 인간의 천부적 권리로서 자유와 평등을 말한다. 하지만, 미국은 기존의 사회질서를 해체하는 과정 없이 이미 평등한 사회경제적 토대가 마련된 상태에서의 정치적 선언 또는 혁명이었던 반면 프랑스 혁명은 기존의 뿌리 깊은 사회질서를 뒤집어 엎는 말 그대로의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적 평등은 물론, 보통선거권, 성평등, 흑인노예, 인종차별, 성소수자 문제 등 대부분의 진보적 가치와 어젠다는 프랑스 혁명에서 처음 주창되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동가의 위치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역사가 니얼 퍼거슨은 영국의 성공 요인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1688년 명예혁명, 1707년 스콜틀랜드와의 합병, 그리고 18세기 중반 7년 전쟁의 승리를 꼽는다. 그런데, 네델란드에서 왕을 수입했던 정치혁명으로서의 명예혁명 보다는 네델란드의 선진 금융시스템 수입을 영국이 패권국으로 도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평가했다. 또, 7년 전쟁을 20세기 양차대전의 原型(원형)이 되는 제국주의 국가의 세계 대전의 前哨戰(전초전)으로 파악한다. 인도와 북미 식민지 등을 놓고 프랑스와 계속 경쟁해 왔던 영국은 이 7년 전쟁의 승리를 통해 인도와 북미에서 프랑스라는 경쟁자의 추격을 저 멀리 따돌리게 된다. 특히, 인도 지배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경제적 잉여가 창출되었는지, 또 신대륙과 인도로부터 생산되는 엄청난 규모의 면직물의 처리를 위한 기계의 발명이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 등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국 금융의 선진화는 영국의 경쟁력을 극대화 시킨다. 전쟁 또는 집중적 육성이 필요한 특정 산업에 자본을 총력으로 투자 경쟁국들에 대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은 화폐 단위를 수 차례 바꾸며 끊임없는 금융 불안에 시달려야만 했던 반면 영국의 파운드화는 단 한 차례의 변화도 없이 21세기까지 단일 통화 체제를 유지해 왔다. 로스차일드 가는 원래 프랑크 푸르트 부근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거권이 있는 제후국의 재정을 일부 담당하는 집안이었다. 나폴레옹의 신성로마제국의 침략으로 이 選(선)제후 등의 재산(금괴 등)을 영국에 밀수하면서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군의 침략에 맞서 해당 제후의 재산을 잘 지켜낸 것으로 커다란 신용credit을 얻게 되고 전설적 금융가문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부르봉 왕가는 7년 전쟁의 패배로 만성적인 재정 적자 문제로 국정에 계속되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또, 이런 재정적 위기와 함께 이 시기 반복되는 불순한 기후 등으로 식량난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혁명이 기폭하게 된다.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의를 개최했던 것이 혁명의 직접적 導火線(도화선)이 되는 것이다. 1등 국가가 영국이라면 2등 국가 프랑스의 근대를 상징하는 사건이 프랑스 혁명이라고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는 근대 역사에서 대표적인 일류 서유럽 국가였지만 항상 영국에 바로 뒤쳐지는 2등 국가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계 식민지 경쟁을 둘러 싼 경쟁에서 영국에 결정적으로 패배하는 ‘7년 전쟁’이야말로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혁명이 제시하는 여러가지 '진보적 가치'가 제시되고 실현되는 근대 역사의 전개과정은 당연히 감격스럽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인류의 커다란 성취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항상 이야기 했듯 역사는 사회경제적 힘으로 운행되는 측면이 커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혁명사를 2등 국가, 프랑스라는 나라의 근대사의 전개과정이라는 視點(시점)에서 바라 보고 싶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이후 19세기 내내 프랑스는 영국과 같은 정치적 안정을 갖지 못한다.

프랑스 혁명의 시기 구분을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시기 1789년부터 1788년까지 이 10년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절충 또는 양립시켜야 하는지 아주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세기에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중국이 개혁개방을 거쳐 경제적 부흥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시진핑 체제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개혁개방에서 공동부유와 같은 ‘평등’을 강조하는 180도 다른 정책노선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다. 평등이라는 가치의 실현은 개인과 사회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적 필연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의 상당한 정치세력들이 중국공산당의 영향력 아래 포섭이 된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경험을 통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진단해 보고 싶어 이 책을 골라 읽게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