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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년의 중국

by neofluctus 2023. 11. 28.

宮本 雄二미야모토 유지 著, 2023년 4월 20일 발행

2035년의 중국-시진핑의 노선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 저자 미야모토 유지는 중국대사를 지낸 일본의 엘리트 외교관 출신이다. 글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얼마나 똑똑하고 섬세하며 디테일한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의 중국 사정에 대해 가장 정통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인상을 계속 받았다.

책의 제목이 말하는 2035년은 중국 공산당의 두 가지 ‘백년의 목표’와 관계 깊은 시간이다. 중국공산당은 2017년 제19회 당대회에서 두 가지의 백년목표를 제시했는데 그 하나가 중국공산당 창당 백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 小康社會(샤오캉 사회)’의 건설, 즉 중국인민들의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목표의 달성이었다. 다른 하나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백주년이 되는 2049년이 그것이다. 21세기 중반까지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현대화를 실현하는 강국”(제20회 당대회 보고)을 만들어 낸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2017년 제19회 ‘당대회 보고’에서 이를 다시 2022~2035년의 1단계, 2036~2050년까지 2단계로 나누고 각각의 목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금세기 중반에는 “종합국력과 세계적 영향력에 있어서 세계의 선두 자리에 서는 사회주의현대화 강국을 만들어 낸다”고 선언한다. 

2035년 시진핑은 82세가 된다. 그 때가지 적어도 ‘中國夢(중국의 꿈)’의 반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對(대)중국 인민들에 대한 시진핑의 공약이라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그 내용은 종합국력에서 미국을 누르고 세계 선두가 되겠다는 선언이라고 부연 설명해 준다.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대결을 상정하고 암시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현대의 중국이라는 나라는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며, 시진핑 정권 하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 또는 요소로서 시진핑이라는 지도자의 개성을 말한다. 그의 부모가 얼마나 애국적이고 당과 국가에 헌신적이었는지 그리고 시진핑이 대륙 국가 지도자로서의 대인적 풍모에 대해서도 솔직히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시진핑의 정치적 야심과 야망은 원대한 것처럼 읽힌다. 등소평을 뛰어 넘고 마침내 모택동마저 뛰어 넘는 정치 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직접 그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종의 ‘誇大妄想(과대망상)’이나 稚氣(치기)처럼 느껴진다. 나 또한 중국공산주의 혁명에 대해 일정 부분 감정이입이 된다. 그만큼 중국의 혁명은 세계사적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택동, 등소평의 역사적 성취를 시진핑과 同價(동가)로 취급하려는 시도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다.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 중국을 해방시키고 통일시킨 혁명 지도자 모택동과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 역사의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개혁개방이라는 눈부신 경제적 성취를 통해 치유해 낸 등소평이라는 혁명세대를 시진핑과 같은 반열에 놓으려는 시도는 거부감이 생긴다. 

시진핑의 반부패 드라이브가 그의 정적을 제거하는 목적과 인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慰撫(위무)하는 카타르시스적 효과 이상으로 혁명세대에 비견할 만한 治績(치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업적은 현재진행형이고 미래 時制(시제)다. 현재의 중국은 상하이 幇(방)을 중심으로 한 경제 중심의 정치세력과 북경을 중심으로 한 정치-이데올로기의 정치 세력으로 크게 구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시장에 자원 배분을 맡기는 경제적 효율성과 정치적 힘을 중국공산당 또는 시진핑 개인에 집중시키려는 시도는 상호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다만, 망국의 뼈아픈 경험 때문에 현재는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려는 당내 세력이 시진핑의 집권에 대한 컨센서스를 가져가고 있을 뿐이고 “얼마나 잘 하는지”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현재 시진핑의 3연임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미래의 실현되지 않은 업적을 미리 당겨 쓰려고 가져온 借入(차입) 부채라고 해석하고 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등소평은 韜光養晦(도광양회)를 유훈으로 남겼다. 하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그 유훈은 폐기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특히, 전랑외교로 표출되는 중국의 대외정책은 주변 국가들의 심기를 상당히 거스르게 한다. 21세기 현재 세계질서는 법치, 개인의 권리와 자유, 국가주권 등과 같은 서구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 위에 건설되었다. 일본도 한국도 그 플랫폼 위에서 발전해 왔다.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집권시기 이후, 부정부패 그리고 불평등 심화 현상이 중국사회에 만연했고 그것에 대한 문제 또는 위기의식이 정치, 이데올로기 중심의 시진핑 노선으로 顯現(현현)했다는 상황적 배경 설명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중국공산당의 창당 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같은 혁명적 상황은 아니며 혁명당이 아니라 집권당의 국가관리 영역에 속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의 반부패 드라이브, 중국몽과 같은 추상적 목표가 민족주의적 에너지를 문화대혁명에 준하는 수준으로 吐(토)해내는 동력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현재 중국사회가 성취한 경제발전은 등소평과 그의 후계자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홍위병 세대고 실제 그의 부모가 문화대혁명으로 고난과 고초를 겪기는 했지만 정작 본인은 부모의 은공 덕분에 협서성에서 지도적인 위치에서 홍위병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대혁명의 그림자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가중치를 더 많이 두는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같은 사건에 대해 인간의 기억은 이만큼이나 다르게 투영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영국이 16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실어나른 흑인 노예가 천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스탈린 시절에 약 4천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었다. 대약진 운동에 죽은 이들은 2천만에서 7천만 명까지 그 범위가 상당히 넓지만 일단, 스코틀랜드 출신의 역사가 니얼 퍼거슨이 말하는 5천5백만 명을 취사선택한다면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아쉽게도 시진핑은 이와 같은 역사의 아픔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역사의 大人(대인)?처럼 보인다. 

물론, 서양사회와 동아시아의 전통사회는 그 발전과정의 궤가 다르다. 동아시아 사회는 훨씬 더 집약적인 농경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개인의 노동을 灌漑(관개)와 같은 사회적 인프라 건설에 동원할 수 있을까 하는 방향으로 국가기능이 고안되어 왔다. 시진핑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 시점이 세계사적인 역사의 변곡점일 수도 있고 언젠가 동아시아가 서양사회로부터의 구속과 규정에서 벗어나기를 학수고대 하지만 선뜻 시진핑 노선에서 그런 轉機(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저자 미야모토 유지는 대표적 중국통 외교관으로서 중국의 군비확장과 남동지나해 등에서 현상유지를 거스르는 중국의 공격적 행태를 멈출 것을 꾸준히 설득해 왔다고 한다. 중국이 세계 2위 GDP국가이기는 하지만 제 1위 미국 및 3위 일본의 동맹에 맞서겠다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중국이 미국의 ‘근심에 찬 얼굴(憂い顔)’과 ‘무서운 얼굴(怖い顔)’ 중 무서운 얼굴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경험을 꺼내 설명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기회균등을 주장했지만 일본이 중국을 독식하려다 미국의 개입과 태평양 전쟁이라고 하는 미국의 무서운 얼굴(怖い顔)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대중정책을 제외하면 미국과 대단히 양호한 관계였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 본다. 시진핑은 2049년이 되면 1인당 국민소득이 $ 3~4만에 이르는 중간 수준의 선진국을 목표로 제시 한다. 그것을 역산하면 연 평균 4.7%의 경제성장을 지속해야만 한다. 미국이 9.11테러로 정신을 빼앗긴 사이 미국의 경계를 피해 중국이 치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중국의 성장은 쉽게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히 한다. 그래서,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일보에서 ‘중국’이라면 모든지 무차별적으로 까고 보는 식의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미야모토 유지는 시진핑의 부모를 중국의 애국적 혁명 지도자들로 묘사한다. 즉, 시진핑이 좋은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설명이다. 또 중국 국민의 특성을 대단히 강인하고 부지런한 근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객관적 시각이 이 사람의 글에 훨씬 더 큰 신뢰를 갖게 하고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동시에 이런 그를 보면서 일본 메이지 시대의 지사들의 애국적 풍모가 느껴졌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체급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생각처럼 쉽게 또는 가까운 시일 내에 그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같은 경우 대만유사가 일어나면 그 혼란을 틈타 동북3성으로 진출한다는 식의 섣부르고 경솔한 전망은 말 그대로 칼집 속에 깊이 숨겨 놓는 자제력이 필요해 보인다. 21년 GDP기준, 중국은 한국의 9배, 거의 10배 수준에 이르는 나라로 성장했다. 이 거인을 상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 단서를 제시해주는 좋은 안내서였다. 앞으로 미야모토 유지라는 이름을 기억하면서 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