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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 세계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by neofluctus 2023. 10. 23.

이 책은 일본 해상자위대 출신의 전직 장교, 石原 敬浩이시하라 요시히로가 북극해와 관련, 군사 안보, 지정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일본의 자위대는 기본적으로 軍隊(군대)이지만, 그 명칭에서 보이듯 애매함으로 일본 군대의 막강한 물리적 힘을 부드럽게 포장하고 있다. 그래서, 분명한 어조로 북극해를 통한 군사 안보적 상황을 말하지 않지만, 에둘러 북극해는 서방과 러시아의 최전선이라고 말한다. 불현듯,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극해에서의 자원경쟁이 투사된 북극해 헤게모니 내지 북극해 자원을 둘러싼 資源戰爭(자원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북극해에 매장된 원유와 천연가스는 전세계 매장량의 각각 12%, 30%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온난화로 인해서 아시아 국가들이 북극항로를 새로운 물류 수송로로 이용하기 시작한다면 세계경제는 지각이 변동하는 것과 같이 커다란 변화를 맞이 하게 될 것이다. (기상학, 지구과학 등 기후와 관련된 공부를 하면 할수록 탄소와의 상관관계를 의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지구의 기후는 태양, 세차운동 그리고 지각운동과 같은 요인들이 결정적이며 이산화탄소를 그 원인으로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지구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온난화 현상 보다는 항상 빙하기 즉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더 생존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 화석연료와 북극항로, 두 가지가 북극해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경쟁, 대결의 뜨거운 장소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결탁에 대해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 양자의 관계를 대단히 부러지기 쉬운, 취약한 관계라고 파악하는 경향성이다. 즉, 러시아 또는 구소련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 지정학적 대립만을 강조할 뿐 그들이 공통의 이해관계 위에서 서로 협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나토와 EU 국가들이 항상 이해가 일치하는 천상의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20세기 인류 최대 양차대전이 모두 유럽에서 벌어졌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갈등과 대립만을 강조하는 사고방식이라면, 유럽은 절대 EU와 같은 연합국가체를 만들 수 없어야 한다. 

냉전기의 중소대립은 지정학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서방이 똑같은 가치를 갖는 선진국들의 연대, 연합을 주장하듯  중국과 러시아도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에서 사회주의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적인 연대를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현상적으로 1950년대 중소대립은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모택동은 이를 정통 사회주의 노선으로부터 이탈, 수정주의라고 맹비난하며 중국과 소련의 균열은 심화되었다. 모택동은 스탈린 격하운동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파악했고 이후 이에 대한 대응으로 문화대혁명 운동을 가열차게 추진한다. 

지난 번, “중국의 행동원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약진 운동은 중국과 소련이 얼마나 더 사회주의적 이상에 충실한가 하는 노선투쟁 혹은 이념논쟁에서 시작, 갈등으로 전개되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모두 소련의 수정주의 노선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소련으로부터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약진 운동은 소련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무리하게 추진된 모택동식 경제개발노선이 만들어낸 참극慘劇이었다. 또 같은 마오이스트였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역시 모택동의 이상주의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하며 인간개조를 향한 사이코 패스적 광기로 킬링필드라는 대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인간의 이상주의가 역사의 변수가 될 수 없다는 주장, 인간사가 모두 지극히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효용성에서 출발한다는 전제 역시 지나치게 이상적인 가설처럼 보인다. 서구사회의 기본축을 형성하는 기독교는 예수의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식의 지극히 비현실적인 주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자들의 수탈로부터 인민들을 해방시킨다는 공산주의 이념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 취지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선진국가의 경제사를 보더라도 보다 민주화된 정치경제 시스템이 그 사회를 부유한 국가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과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은 서방세계만의 고유한 능력이 될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도 모두 중소의 분열이 사회주의를 고립시키고 망하게 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다 현실적 실용적으로 공통의 이해에 기반한 새로운 중러 동맹, 북극권 개발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현재, 중국은 북극해 자원개발을 위한 조사, 탐사 등의 활동에 대단히 적극적이다. 조사와 탐사는 당연히 군사적 목적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원이 러시아 측 바다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한편, 한국도 북극위원회와 같은 서방중심의 북극개발 조직의 옵저버로 숟가락을 얹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의 국력신장, 국제적 지위가 얼마나 많이 향상되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히, 우리 사회도 더욱 북극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해관계에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은 에너지와 식량 안보에 대단히 취약하다. 장기적으로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 문제를 알리고 국민적 이해와 공감을 확보한 뒤 그 해결책을 찾아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 해외 에너지자원 개발에 대한 시도가 있었지만 그 개발계획 자체도 실패했고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은 훨씬 더 큰 패착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