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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중일전쟁

by neofluctus 2023. 10. 17.

新潮社(신조사) 2018년 발행

중일전쟁에 대해 파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책 또한 여러 명의 연구자들이 각각의 전공과 관련된 주제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낸 것이라 다소 산만하다는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중일전쟁의 全貌(전모)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중일전쟁이 태평양 전쟁의 직접적 계기였다는 사실과 함께 당시 일본은 중국 대륙과 태평양에서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진행하다 패전했다는 사실도 알수 있었다. 미국이 일본의 중국 獨食(독식)을 막으려 했던 이유는 태평양에서 미국의 헤게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사는 倭가 지배하는 역사시대로 구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중국이라는 만찬 직전,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것이었다. 

중일전쟁의 교훈은 21세기 동아시아 정세를 가늠하고 예측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세력을 지속적으로 제어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확대시키려는 전략을 펼 것이 분명하다. 중국과 일본 중 어느 누구도 압도적인 실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諸國(제국) 중에서 최약체다. 중일러라고 하는 강대국 사이에 우리의 입지를 확보하려고 할 때마다 미국이라는 레버리지의 효용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쟁은 일본 군부 특히 육군의 호전성, 중국 대륙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지배욕먕이 일본 내각의 신중론을 항상 압도하면서 전개되어 나갔다. 일본이 사무라이적 호전성, 상무정신을 조금만 자제했어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정했을지도 모른다.

장개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치는 전쟁보다 중요하고 선전선동은 정치보다 중요하다.” 선전선동은 중국공산당의 전유물인줄 알았는데 중국 역대 왕조의 오랜 통치 경험에서 나온 중국 엘리트들의 전형적 대중지배 기술이라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장개석은 의도적으로 일본과의 전쟁의 무대를 상해로 정한다. 그 이유는 상해는 서구 열강들의 조계지 등이 집결해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이곳을 일본이 공격하게 함으로써 국제여론을 중국에 동정적 호의적으로 만들려고 했다. 상해와 남경을 포기하고 사천성의 중경으로 수도를 옮기는 지구전과 국제여론전에 집중하는 두 가지를 일본과의 전쟁 전략으로 선택한다. 

이렇게 보면 장개석의 대일전쟁 전략과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은 쌍둥이 형제처럼 중첩되는 면이 있다. 장개석이 중경으로 들어가면서 선택했던 지구전과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의 연안으로의 長征은 너무나 유사하다.

이와 같이 장개석은 일본과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카이로 회담의 당사자가 되고 국제연합의 상임이사국 자리도 차지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장개석을 중국현대사에서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업적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대륙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미국의 전략적 판단 착오였을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용인한 것일까? 키신저 외교에 의한 70년대 초반 미중 데땅트는 이러한 사전적 포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이후의 역사의 전개과정 속에서 미국은 똑같은 조건이라고 한다면, 일본과 중국에 똑같은 가중치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에 훨씬 厚(후)하다. 그만큼 일본이 더 껄끄럽고 까다로운 상대일지도 모른다.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이 중일전쟁에서 패배로까지 연결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현재까지 중일전쟁을 말하면서 누구도 일본을 패전국가, 중국을 승전국가라 선뜻 말하지 못하는 전쟁의 성격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