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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주자학과 양명학入門 朱子学と陽明学

by neofluctus 2023. 10. 12.

 

入門 朱子学と陽明学 입문 주자학과 양명학

小倉 紀蔵 오구라 키조오

2012년도에 나온 책이다. 저자 오구라 키조오는 서울대학교에서 8년 동안 공부했다.

젊은 시절, 한국사상의 全貌(전모)가 너무 궁금해 한국사상사라고 하는 세권 짜리 책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내용 중 우리 민족의 사유체계 또는 그 정신세계에 대해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 없다. 저자 오구라 키조오는 하나의 사상 또는 철학이 위대해지는 것은 공자 또는 맹자와 같은 사상가 자신들 뿐 아니라 후대의 능력있는 사상가들이 그들을 얼만큼 깊이 연구하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유학을 발전시키고 현대까지 살아남게 한 대표적 사상가가 바로 '주자'라고 말한다.

성리학 혹은 주자학은 조선조 5백년간 우리 민족의 통치 이념이고 종교였으며 광대한 우주에 대한 인식체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을 대중들에게 설득력있고 알기 쉽게 소개할만한 개설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불행이라면 불행,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 일본 학자의 글을 통해 주자학의 眞髓(진수)에 접하게 되었다. 역시, 일본 학계의 동아시아에 대한 연구 수준은 발군이다. 

참 곤혹스러운 경험이지만, 논어의 말씀처럼 때때로 배우고 익히려 해도 논어, 맹자와 같은 유교 경전에서는 기독교 성경 또는 불교 경전에서와 같은 깊이를 느낄 수가 없다. 그런데, 유학 또는 유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전 자체가 아니라 그 주석서를(주자집주와 같은) 읽어야만 유학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자학은 인간의 性善說성선설을 주장한다. 인간이 갖고 태어난 性稟성품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근거 혹은 단서로서 仁義禮智인의예지와 같은 四端사단을 말한다. 다만, 사람 마다 七情칠정과 같은 氣質之性기질지성이 그가 본래 갖고 태어난 완전 무결한 도덕성으로서의 性성을 가리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주자학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엄청난 낙관론에 기반한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쉽게 그 理를 깨닫고 이 우주의 도덕성 또는 원리와 일체화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힘들고 번거롭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야만 그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성선설을 주장하는 주자학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천진난만한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구라 키조오는 주자학의 성선설은 인간을 누구든 聖化성화시킬 수 있다는 엄청난 낙관론 입각해  압박으로 몰아세우는 긴장과 박력의 철학이라고 이해시켜준다. 주자학은 대단히 역동적인 철학이디.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며 부패하지 않도록 서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성인에 이르도록 경쟁시키고 자극하는 학문이었고 한다. (이런데서 조선시대의 당쟁이 나오고 현대 한국의 이념적 갈등이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해 보았다.)

주자학은 인간 자체의 性성을 우주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근원이 되는 원리 즉, 理리로 파악한다. 그래서 주자학을 性理學(성리학)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반면, 氣(기)는 다소 물질적인 그러나 생명력을 갖는 하나의 우주적 에너지라고 한다. 다만, 이 기라는 개념은 유교사회의 차별을 합리화하는 개념으로도 사용이 된다.

좋은 설명은 아니라고 하지만, 성리학의 리는 서양철학의 로고스와 유사한 개념으로 또 기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형상과 질료라고 하는 이원론에서 그 질료와 비슷한 개념으로 대응을 시키면 편의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주자학은 중국의 宋代송대에 탄생한 학문이다. 이 시기 중국은 강남 개발을 통해 경제사적으로 질적인 변화와 도약을 하는 시기였고 주희와 같은 사대부 계급이 출현하는 사회적 배경이 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金의 침략과 압박을 받고 사상적으로는 당대 이후 불교의 영향력이 지배적으로 되면서 한족의 정체성에 대한 위협과 존재론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것이 주자학의 탄생배경이다. 주희는 불교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고 결과적으로 주자학은 이와 같이 불교의 형이상학적 질문과 도전에 대한 답이라고 볼수 있다. 원래 전국시대 생활 정치사상에 불과했던 유학을 철학, 종교와 같은 경지로 재해석해내게 된 것이 주자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자학은 주희가 창시한 또다른 新유학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때문에,주자학의 경직성이 이와 같은 華族화족의 패배와 열등감에서 발원한 도덕주의, 민족주의로 읽힐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 보았다. 

사대부들은 우주의 에너지 또는 그 근본원리, 생명력과 하나가 되기 위해 格物致知(격물치지), 豁然貫通(활연관통)과 같은 인식론적 노력을 다했다. 그 과정은 讀書독서, 敬경, 誠성과 같은 수행방법을 통해서 우주와 하나가 되고자 했다. 우리 조상들이 독서를 기도와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다.

그 밖에 이 책에서 흥미 있었던 주제는 ‘鬼神論귀신론’이다. 주자학에서 귀신론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저자는 주자학과 무속과의 관계를 특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예시한다. 조선조 사회는 양반 사대부 계층이 귀신을 ‘이와 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데 鬼귀는 氣기의 屈折(굴절), 歪曲(왜곡)과 같은 현상으로 파악했고 神신은 氣기의 擴張(확장)이라고 보았다. 무속에서 보이는 초월적 현상을 자연철학적 개념으로 해석해 낸다. 조선조의 선비들은 자신들의 세계와 우주에 대한 인식능력이 무속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자부, 자신하고 있었다. 조선사회는 양반의 주자학적 세계관과 서민계급의 무속이라는 이원화된 우주, 세계로 분절된 사회였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이곳에서 조선조 성리학의 종교성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조 사대부들에게도 서민들의 종교 무속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형이상학적 인식, 우주 인식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성리학은 불교의 인식론, 형이상학과도 일정한 연속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자 자신도 젊은 시절 불교에 심취해 있었고 조선은 불교사회 고려왕조에 대한 부정으로 건국되었기 때문에 그 그림자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성리학을 종교로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은 이런 곳에서 읽혀진다.

그리고, 주자학의 귀신론을 서양 근대철학, 특히 헤겔 철학의 Geist, spirit, esprit와 대비시키면서 주자학으로부터 근대적 사고 또는 근대정신의 맹아를 구현할 수 있는 또는 있었던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것이 대단히 독창적이고 참신한 해석처럼 보인다. 동아시아 사회는 서구의 근대에 뒤쳐지고 그들의 폭력 앞에 무너졌기 때문에 근대의 극복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20세기 일본 제국주의는 서양 제국주의에 대한 거의 유일한 반동, 세계사적으로 대단히 예외적 현상이었다. 그 예외적 카테고리에 조선의 식민지화가 포함되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이 아니라면 조선은 다른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한국이 혹은 동아시아 사회가 서양사회를 극복할 수 있을까?

조선의 사대부들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독서의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었던 좋은 기억으로 남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