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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I

by neofluctus 2024. 2. 21.

일반적으로 서양사에서 중세라는 시대는 다음과 같이 시기로 구분한다. The Early Middle Age, The High Middle Age, The Late Middle Age 그것이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각각의 시기를 박듯이 특정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번째 시기를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476년부터 서기 1000년까지, 번째는 1000~1300 사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하는 1492년으로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책은 움베르트 에코가 기획한 서물이다. 그래서 서양 중세를 대상으로 책인 알았는데 실제로 읽다 보니 유럽과 이슬람 사회, 나아가서는 중국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중세라는 시대를 상당히 포괄적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그러니까 세계사적 의미에서중세 말하는 것이다. 전체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 1권은 위의 초기 중세를 그리고 2권은 1000~1200, 3권은 1200~1400, 4권은 1400년에서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까지가 서술 대상이다.

각각의 책은 기본적으로 역사, 철학,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 예술 그리고 음악이라는 하는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주제 역시 명의 필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나누어 모자이크와 같은 역사 서술을 하고 있어 다소 중복되고 산만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유럽과 이슬람 사회에 대해서 정도 수준의 역사책을 출판 기획하려 노력은 일단 가상하다고 평가해 주어야만 하겠다. 그러나, 그런 선의에 비해 번역 수준은 다소 함량 미달인 것이 분명하다. 1권의 번역은 나름 준수했던 같은데 현재 읽고 있는 2권의 번역 상태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사전에 일정한 내공이 있었야만 같다. 같은 필부가 읽어 내기에는 다소 버겁게 느껴지는 책이다. 기본적으로 책은 생소하고 복잡 다단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마치, 처녀림을 헤매는 것처럼 지식의 숲길을 헤매다가 쉽게 길을 잃어 버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번역이라는 가이드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가이드 fee 결코 만만치 않은데 가격에 비해 서비스의 품질은 너무 조악하다.

근대 이후의 유럽은 세계사의 플랫폼이 되어 동아시아 사회를 비롯한 세계를 지배, 규정해 왔다. 때문에 서양의 근대를 출현 또는 배태시킨 유럽 중세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은 매우 크다. 벽돌책에 도전하는 것은 단순히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허위 의식만은 아닐 것이다. 서구 백인 그들의 힘의 源泉(원천) 무엇인지 上流(상류)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언제나 숙제였다. 다행히 책을 통해서 그런 지적 허기를 달래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세계사를 보다 높은 곳에서 조감할 있게 같다.

근대 유럽은 이슬람 사회가 지중해 고전 문명의 지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 서유럽에 건네지 않았다면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있을 같다. 책은 이슬람이 중세 특히, 서양 중세와의 관계에서 이슬람 사회가 유럽 사회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해준다.이것은 나에게 역사에 대한 일종의 開眼(개안)처럼 느껴진다. 

유대인 역사가 리차드 번쉬타인 그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에서 중세 유럽이 이슬람 문화와 조우하는 장면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만남은 11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 있었던 리콩퀘스타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7세기 이슬람이라는 신흥 종교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탄생하고 세력을 확장, 스페인의 도시 톨레도 이하 남부는 이슬람의 세력권에 편입된다. 이때서야 비로소 유럽은 이슬람 사회를 통해 그리스 로마 고전 문명을 재발견하게 된다. 번쉬타인의 책에서 발견했던 단서들, 유럽의 근대는 중세 이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아주 구체적으로 상술하고 있는 책이 바로 중세라는 책에 해당한다. 

유럽 사회의 주역은 크게 라틴족, 게르만족, 슬라브족으로 나눌 있을 같다. 그리고 밖에 유대인, 헝가리인 등의 조연도 포함시킬 있을 것이다. 

먼저, 게르만족의 시원을 살피면 이들이 원래 정착했던 곳은 덴마크를 포함하고 있는 유틀란트 반도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부였다.  기원전 700~500년이 되면 네델란드에서 러시아 서부까지 영역이 팽창한다. 기원전 2세기 로마의 팽창에 밀려 일단, 이동을 멈추었다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며 유럽의 주인공이 된다.

아프리카 북부와 이베리아 반도는 고트족, 이태리는 랑고바르드족, 중서부 유럽은 라인강 하류 동안으로부터 이주한 프랑크족 그리고 브리튼 섬은 앵글로, 색슨, 쥬트족이 장악하는 형세를 이룬다. 

슬라브족은 기원전 1000년경 카르파티아 산맥(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에 걸쳐 있는) 북부와 동부 지역, 폴란드와 독일 사이를 가로 지르는 오데르 (대략 독일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국경 사이에 위치하는 ) 드네프르 사이의 드넓은 분지에 정착한다. 특히 훈족 등의 칩입으로 5세기~7세기 독일 동부, 발칸 반도에서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까지 이르는 지역에 폭넓게 점령하게 된다. 특히 서브 슬라브족은 게르만족이 버리고 광할한 지역을 평화롭게 팽창해 나갔으며 세기 만에 독일 전체를 차지한다. 그러나 신흥 프랑크 왕국에 의해 다시 동쪽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의 약화와 함께 발칸반도의 그리스 지역까지 밀고 내려 간다.

한편, 책은 동로마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다. 동서 로마 제국은 이미 물리적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특히 성상파괴운동(726~843)으로 심리적 간극이 깊어 진다. 동로마 교회는이콘이라 불리는 聖像(성상) 우상 숭배라 단죄했지만 서방의 로마 교회는 성상이 읽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성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로마 가톨릭 사회의 구상 미술은 르네상스 등을 거치며 꽃을 滿開(만개)하게 된다.

아무튼, 7세기 이후 급속히 팽창하는 이슬람 세력에 밀려 동로마 제국은 세력권이 점점 축소된다. 

이슬람 세력은 예언자 모하메드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칼리프들의 시대를 거쳐 페르시아계 압바스 왕조가 지배를 하다가 몽골의 침입으로 무너진다. 이후 다시 오스만 투르크가 이슬람 세계를 통일한다.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이슬람 세계의 역량은 압도적이었다. 한편, 고전 문명을 온전히 보존하고 발전시켜 중세를 꽃피웠던 선진 이슬람 사회는 근대화의 주역이 되지 못하고 역사의 패배자가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단순히 승자의 교만 때문인지 아니면 신의 攝理(섭리)였던 것인지? 이런 의문을 충분히 해소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中世(중세)’라는 책의 長征(장정) 계속해야겠다.

시기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했던 운명과 섭리에 관해 했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pp394~395

보에티우스가 철학을 통해 제시했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운명과 섭리의 구분이다. 모든 사건에 대한 우주의 규칙은 신학적 관점에서 고려할 섭리라는 단어를 사용할 있으며, 사건의 외부에 존재하고 전지전능하며 초시간적인 특성을 지닌다. 반면 운명은 시간 속에 살아가는 피조물에 관한 것으로, 인간은 이성ratio이라는 지식에 도달할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지만 신과 같이 완벽한 관점을 소유할 수는 없다.(보에티우스는 이런 점을지성intelligetia’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특히 악의 존재는 심오하지만 제대로 설명하는 불가능하다. 신에 다가가지 않고는 피조물의 균형을 이루는 비밀을 이해할 없기 때문이다. 그는 플라톤의국가 참고해서 단계적인 인식론을 발전시켰고, 이로 인해서철학의 위안 중세에 다른 철학과 연관된 참고 자료를 전달해 주었다.”

보에티우스의 섭리의 개념은 그가 마지막 책에서 다루는 윤리적-형이상학적 문제로 이어진다. 만약 신이 모든 것을 관찰하고 전지전능하다면, 그리고 완벽한 만큼 실행할 가능성이 없다면 그의 섭리는 미래를 예견할 있다는 사실을 필요가 있다. 모든 인간의 활동은 예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자유가 없는 착한 사람의 선이나 나쁜 사람의 죄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런 경우라면 인간은 철학을 통해서 사물의 이면에 있는 본질을 이해할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이 영원한 현재 속에서 인간의 모든 결정을 꿰뚫는 이상, 이상 어떤 미래에 대해서도 명상할 필요가 없다. 자유로운 만큼 예견된 것이며 필요한 만큼 예견된 것이다. 시간 밖에서 사물에 대한 순수한 시선은 동일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지니기 전에는 그것에 대한 어떤 조건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이런 점이예견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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