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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왕국 프로이센

by neofluctus 2024. 3. 10.

저자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호주 출신의 독일사학자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이며 2015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에 영국과 독일의 관계를 위해 일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지난 번 읽었던 ‘독일 현대사’는 독일의 1870년 통일부터 1990년 재통일에 이르는 시기의 말 그대로의 ‘독일사the Hisotory of Deutschland’였다면 ‘강철 왕국 프로이센’은 약 1600년부터 1945년까지 지원진 이름의 나라 프러시아(프로이센은 Preussen이라는 독일어, Prussia는 영어식 표현이다; 익숙한 프러시아로 쓰겠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미국과 영국은 양차 대전의 원인을 프러시아라는 국가의 정신, 정체성에 있다고 파악하고 그 물리적 실체와 함께 그 정신(Preussentum)을 지우고자 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독일의 지명에서조차 프러시아라는 이름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일본의 근대화는 프러시아의 역사 발전을 그 모델로 차용했고 한국, 대만, 중국의 개혁 개방은 모두 일본으로부터 그 근대화에 필요한 방법들을 학습해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러시아는 더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의 대상이 되는 나라였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여러 선택지 중에서 그리고 그 격변의 시기에 어떻게 그 발전의 精粹(정수)를 찾아 일본이라는 나라가 근대화에 성공하게 되었는지 정말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이 궁금증을 계속 되뇌이면서 그 답을 찾아가고 싶다.

앞서 소개한 책 ‘중세’에서 13세기 폴란드와 헝가리가 몽골의 침입으로 인구가 격감했을 때 서쪽의 부지런한 게르만족이 이주해 그 빈자리를 메웠기 때문에 오히려 몽골의 침입 이전보다 생산성이 더 올라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프로이센 정신(Preussentum, Prussia Virtues)이라고 칭송하는 독일의 국민성이 꽤 오래전부터 프러시아 지역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의 서러시아,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폴란드에 이르는 북독일, 발트해 연안 지역은 원래 이교도들(기독교 입장에서)이 살던 지역이었다. 인종적으로는 슬라브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13세기가 되면 튜튼 기사단 혹은 독일 기사단이 십자군 전쟁을 벌여 서서히 이 지역이 기독교화 된다. 이들 독일 기사단은 같은 가톨릭 국가인 에스토니아-폴란드 국가들과도 영토적 전쟁과 대치를 하게 된다. 십자군 전쟁 이후 템플 기사단의 숙청을 지켜 보면서 이들 기사단들은 교황과 가톨릭 교회에 엄청난 불신과 원한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훗날 종교 개혁에 이르는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18세기 출현한 프리메이슨과 그것의 급진 세력인 일루미나티는 모두 독일 가사단과 무관치 않다.  

주요 프러시아의 통치자들을 간단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1525년 튜튼 기사단의 大마스터였던 알베르트가 프러시아 공작이 되며 세속국가화 된다. 알베르트는 브란데부르크를 영지로 갖는 호헨즐레른가의 귀족이었고 브란데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출권을 갖는 選(선)제후국이었다. 이후 프러시아는 호헨즐레른가의 가계로 이어진다.

1688-1713년(재위) 프리드리히 1세 시기 신성로마제국내에서 공국에서 왕국으로 도약한다.(1870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 신성로마제국은 오스트리아를 포함해 약 300여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의 느슨한 연합이었다.)

1713-1740(재위) 프리드리히 빌헬름 I는 군인왕이라 불리며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 전성기의 초석을 놓는 군제 개혁 등을 이룬다.

1740-1786(재위) 프리드리히 II, 프리드리히 대왕이라고 불린다. 18세기 계몽군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와 이순신 그리고 계몽주의를 합쳐 놓은 듯한 인물처럼 보인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1740년 즉위하자 마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영토였던 실레지엔을 공격해서 차지한다. 이는 그때까지 신성로마제국 내의 역학 관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는 대 변곡점이 된다. 오스트리아는 영국과의 동맹을 포기하고 프랑스, 러시아와 동맹을 맺게 된다. 그 결과물이 7년전쟁(1756-63)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니얼 퍼거슨에 의하면 7년 전쟁은 산업혁명 이전 시기, 20세기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최초의 세계적 규모의 대전쟁이었다고 파악한다. 프랑스가 인도와 북아메리카에서 입지를 상실하는 것과 동시에 이제 러시아는 유럽 역사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등장하게 된다. 이 전쟁의 결과로 폴란드는 러시아와 프러시아에 의해 분할 점령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거래를 통해 프러시아의 동부 영토를 러시아에 양도하고 서쪽의 라인강 유역의 공업 지대를 획득하게 된다. 이 모든 사단이 프리드리히 2세의 슐레지안 침공에서 격발된다.

프러시아는 官民(관민)이 一體(일체)화 되는 전형적 사회였던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프러시아는 문맹률이 낮고 식자율이 대단히 놓은 사회였으며 공무원들이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계몽주의자로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 영미 사학계의 주장처럼 시민 계급의 성장이 지체된 독일의 후진성이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치세를 계몽주의 그 자체로 파악했다. 왕이 스스로 프리메이슨의 회원이 되었고 수많은 독서회와 이념써클에 공무원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의견을 언론 매체에 피력한다.

1820년대 헤겔은 프로이센이라는 국가를 ‘이성’과 동일시 하며 그의 시대에 이르러 역사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일체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와같이 저명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조국에 대해 했던 평가를 오늘날 단순히 국수주의적 뽕이라고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 사회의 성격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 18세기 영국에서는 좀도둑에게도 쉽게 사형 판결을 내려 처형했고(한 해 1천 명이 넘었다) 수 많은 경범죄자들을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오지에 갖다 버렸지만 독일에서 이 시기 사형수는 한 해 세 자리수를 넘지 않았다. 그것도 실체 처형된 경우는 아래쪽 두 자릿 수에 해당한다. 또 오늘날과 같은 사회복지 개념이 모두 공산주의자들이 아닌 바로 프로이센이라고 하는 국가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 영미 사학계는 이를 단순히 융커 귀족들이 가부장적 권위주의에서 비롯된 사회정책이라 폄하하지만 그런 주장은 牽强府會(견강부회)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독일 철학과 실제의 국가실체와의 유착을 보면서 독일 근대 철학을 지나치게 이상화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것은 바로 이 시기 헤겔이 프로이센이라는 국를 통해 국가와 이성이 합체되는 역사의 종언이 이루졌다는 선언을 카피한 것이었다.또,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칼 마르크스가 헤겔의 ‘국가’를 유물론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치환한다. 그의 자본주의 종말론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역시 헤겔을 본 뜬 것이었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서양 철학이라는 것 역시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다.

프러시아는 사회경제적으로 균질한 사회 구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엘베강 동쪽과 같이 융커 귀족 중심의 봉건적 사회질서가 강한 사회도 있었지만 라인강 유역의 서부처럼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사회경제 구조를 동시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말할 수가 없다. 지배계급의 비정상적 내지 과도한 착취 구조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세기는 공산주의의 시대였지만 역사적 실험을 통해 ‘평등한 인간 사회’는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는 역사적 교훈을 학습하게 되었다. 때문에 중국 전국시대 유학자들이 王道(왕도)정치를 주장했던 것처럼 프러시아와 같은 사회 모델을 참고하는 것은 결코 무용한 노력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 이후 愚衆(우중)의 정치 시대로 접어든 것이 분명하다.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의 불만과 불안이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며 표출되기 보다는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 모리배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 이 혼란과 혼돈의 와중에 올바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기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 듯 내 의식의 안뜰에 이렇게 봄볕과 같은 각성의 시간이 찾아 드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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