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對話

프랑스 혁명과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by neofluctus 2024. 1. 10.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스페인의 종주권은 1811년에서 1824년 사이에 완전히 붕괴되고 라틴 아메리카 제국은 독립국가가 되기 시작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은 미국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독립과 자유라고 하는 이념적 지향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국제정세의 변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나아가 미국의 먼로주의 선언(1823) 배경이 되기도 한다.

7 전쟁(1756-1763) 20세기의 양차 대전에 앞서 최초의 식민지 경쟁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간의 세계 전쟁의 성격 갖는다. 특히, 7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경쟁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압도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7 전쟁의 패전으로 프랑스는 만성적인 재정문제에 허덕이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프랑스 왕실과 시민 계급의 갈등이 증폭되고 혁명으로 폭발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은 자코뱅의 공포정치를 경험하면서 급진적 혁명 세력에 대해 민심이 이반하게 되고 나폴레옹의 쿠데타가 성공하는 배경이 된다. 한편, 프랑스혁명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게는 왕정에 대한 도전 세력 균형의 와해를 의미했기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공공의 적이었다. 여기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는 프랑스의 宿敵(숙적) 영국이었고 나폴레옹은 이에 맞서 영국을 겨냥한 대륙봉쇄를 한다. 

이때 영국은 포르투갈의 식민지, 브라질에서의 기회를 엿보며 이권을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과의 관계가 긴밀했다. 이에, 포르투갈이 대륙봉쇄의 명령을 어기고 영국과의 교역을 계속하자 이것이 나폴레옹의 침략의 구실이 된다. 

침략은 '반도전쟁(Peninsula War;1807~1814)’또는 베리아반도 전쟁이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다소 익숙하지 않은 전쟁이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 포르투갈을 점령하고 1808년에는 동맹관계에 있던 스페인을 침략한다. 스페인은 처음 나폴레옹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지만 트라팔가 해전에서 패배 이후 연합군과 나폴레옹 사이를 오락가락 하다 나폴레옹의 의심을 사게 되며 기회를 엿보던 나폴레옹은 당시 페르디난드 7세와 그의 아버지 찰스 4세를 퇴위시키고 자신의 형을 스페인 왕으로 만들어 버린다.

프랑스의 포르투갈과 스페인 침략은 유럽 대륙으로 한정되는 사건이 아니었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이들 양국이 갖고 있는 거대한 식민지가 있었고 프랑스가  라틴 아메리카에 종주권을 대신 행사하게 된다면 심각한 세계 질서의 현상변경이 되는 사건이었다.

영국은, 제조업의 경쟁력을 갖고 라틴 아메리카와 꾸준히 교역을 확대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半島戰爭(반도전쟁)’ 통해 프랑스 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축소 내지는 단절시키려는 의도를 관철시킨다.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라틴 아메리카의 공화주의 운동은 영국의 펌프질에 의해서 더욱 가속, 심화된다. 라틴 아메리카 독립의 주요 인물 시몬 볼리바르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메스티조 혼혈 부대를 이끌고 스페인에 대항한다.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페루 등이 이때 독립하며 아르헨티나, 칠레, 우르과이도 독립을 이룬다. 

1805 트라팔가 해전에서의 패배, 반도전쟁 등으로 힘이 빠진 스페인은 이상 효과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 경영을 없게 된다. 특히, 해상에서 전직 영국해군 장교였던 Thomas Cochrane경이 이끄는 독립군 함대가 스페인의 해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Thomas Cochrane 런던에서 주가 조작 혐의로 영국 왕립함대에서 해고된 인물이고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새로운 기회를 통해 후에 복권된다.

이후, 영국은자유무역 표방하며 꺼릴 없이 라틴 아메리카와의 교역을 더욱 확대해 나가게 된다. , 미국의 입장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은 자신의 마당에서 존재론적 위협이 되어 왔던 구대륙의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먼로주의를 선언하며 아메리카에의 불간섭을 유럽에 주장한다. 이는 한편으로 서태평양 극동에서 러시아의 도발이 있던 상황에서 영국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국력이 점차 성장하면서 수세적 입장에서 선언된먼로주의 해석이 공세적으로 바뀐다. 결국, 영국을 포함한 모든 구대륙은 아메리카에 대해 개입할 없다는 대외정책의 표방으로 확대 해석되며 영국도 예외의 대상은 아니게 된다.

'對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ptation의 의미  (0) 2024.04.08
영어의 흥미로운 語源(어원)  (0) 2024.01.11